4.3 아픔 딛고 美 뉴욕서 유통업 '성공신화'
4.3 아픔 딛고 美 뉴욕서 유통업 '성공신화'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7.10.15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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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한진 뉴욕제주도민회장...가족 잃고 역경 이겨내 이국만리서 기업가로 변신
억척스런 제주 정신으로 한인동포 사회 발전 한 몫..."제주인 스스로 제주 지켜야"

[제주일보=김태형 기자] ‘4·3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한(恨)많은 섬소년, 제주인의 성실함과 억척스러움으로 고진감래 끝에 미국의 중심도시 뉴욕에서 한인 유통업의 성공신화를 쓰다.’

어느덧 팔순으로 접어든 이한진 뉴욕제주도민회장(80)의 삶은 제주의 뼈아픈 과거를 거쳐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볼 수 있는 창(窓)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란만장하다. “무엇보다 제주와 제주인을 지켜야 한다”며 제주의 올곧은 정신을 역설하는 그는 아픔과 역경을 이겨낸 후 머나먼 이국만리에서 기업을 일구고 고향 제주의 더 넓은 도약을 응원하는 ‘글로벌 제주인’ 으로 활약하고 있다.

▲뼈아픈 역사에 꿈마저 잃다=일제시대 당시 제주시 화북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격동기를 맞은 소년 이한진은 한학교육을 받을 정도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1948년 발발한 4·3사건은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잃고 집까지 불태워져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모진 비바람이 불었던 뼈아픈 그날을 소년 이한진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한으로 간직해야만 했다. 그는 “4·3으로 가족을 잃으면서 11살 때 중학교도 못 들어갔다”며 “친척 분이 시신을 챙겨 안장한 날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고모의 돌봄 속에서 소년 이한진은 잘 곳을 찾지 못해 떨어야 하는 밑바닥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후 힘든 상황은 계속됐지만 신문 배달 등으로 돈을 벌며 청년으로 성장한 이한진은 제주상고를 졸업해 제주대 영문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교사 자격증까지 얻게 됐다.

내심 대학원까지 꿈꿨으나 도장과 미용 등을 배우며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형편 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포기 이후 전자제품 회로 생산업체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디딘 이한진은 일년 반 후 일본 소니 협력업체로 유명한 일본계 회사 대동전자에 입사, 기업가로서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뉴욕에서의 새로운 도전=회사에서 자재과장 등을 맡으면 기업의 노하우를 익힌 이한진은 40대를 앞둔 1976년 플라스틱 사출원료 등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갔다가 더 넓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이후 거듭된 고민과 아내와의 협의 끝에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에서 ‘제2의 인생’을 펼쳐보겠다는 도전 정신을 갖게 됐고, 가족들과 함께 뉴욕 이민자들의 첫 출발지인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시작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밑바닥을 경험한 터라 투철한 도전정신과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이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한 이한진은 자신보다 어린 젊은 동포가 운영하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하게 되면서 유통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힘든 생활의 시작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매일 같이 새벽부터 별을 보면서 출근한 후 벌어들인 품삯을 은행에 차곡차곡 저축하면서 종잣돈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매일 저축하는 습관은 은행으로부터 신용을 얻는 기회를 만들었고, 이에 힘입어 사업자금을 대출받아 본격적인 슈퍼마켓 사업에도 뛰어들게 됐다.

▲이국만리에서 유통업을 일구다=자신의 이름을 딴 ‘LEE & SON’이라는 상호로 슈퍼마켓을 운영하게 된 이한진은 성실과 신용을 신념으로 삼아 경영에 올인했다. 운영 과정에서 권총 강도를 만나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있었지만 성공을 향한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5년 만에 지상 주차시설 500대 규모와 원 블록 계산대 11대 등의 대규모 슈퍼마켓 스토어인 ’KEY FOOD'를 운영하게 된 이한진은 이후 운영 매장을 4개로 확대하며 성공 가도를 질주했다. 그는 “백인 상권 지역에서 사업 확장이 힘들었지만 경력을 쌓고 미국사회에서 중요한 신용을 잘 닦고 약속을 잘 지키면서 매장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15년 넘게 대형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면서 한인 유통업의 기반을 닦은 이한진은 현재 ‘STOP 1'이라는 유통업체를 통해 비즈니스를 지속하면서 한인동포 사회 발전을 위해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는 제주 출신인 강익조 전 뉴욕한인회장의 한인회관 설립 당시 후견인 역할에 충실했는가 하면 1978년 뉴욕제주도민회를 만드는데 앞장섰다. 현재 다시 뉴욕제주도민회장을 맡아 장학금 등의 도민 2세 지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고향 제주에 대한 유별난 사랑=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그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게 각별해 지난달에 제주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제주상공인 리더십 포럼’에 참가해 그의 경영 및 인생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항상 제주 관련 소식을 접하고 있다는 이 회장은 “도민들이 열심히 해서 제주가 많이 달라졌다”면서도 “더 큰 제주, 더 넓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주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면서 내실을 기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주어가 차별화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 만큼 제주어로 말하기 등을 통해 제주의 특성을 살릴 필요가 있으며, 미국 관광객 등을 위한 크루즈 상품과 제주적인 쇼를 개발했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이 회장은 특히 “물과 공기를 지키고, 도민들이 원주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민 생활소득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제주인 스스로 제주를 지키고 제주인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태형 기자  sumba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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