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제주의 딸
명랑한 제주의 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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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 / 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아버지는 황사평 성지에 잠들어 계시기도 하고 나의 마음 속에 살아계시기도 하다. 근래, 아버지 기일에 맞춰 가족들과 그곳을 찾았다. 그날, 황사평의 하늘은 먹빛으로 내려앉아 키 큰 나무들의 초록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비 오다 잠시 그친, 그 시간의 황사평은 온화한 공기가 감돌았다. 아버지 이름 앞에서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고개를 조아리는데, 보고픔에 눈물이 방울 되어 흘렀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사랑과 추억이라는 아주 큰 재산을 물려 주고 가셨어요’라고 아버지께 말하였다. 아버지가 들으셨나 보다. ‘무슨 일이든 네가 하고픈 일을 해라. 너는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용기의 말씀을 주셨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책을 좋아하면 공부를 잘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은 나와는 무관했다. 나는 그저 책 읽는 것만 좋아했다.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 톤이 올라갈 즈음이면 아버지는 주섬 주섬 낚시 장비를 챙기며 내게 윙크를 하셨다. 그 윙크의 의미를 잘 아는 나는 보조가방에 얼른 읽고 싶은 책들을 챙겨 아버지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다. 아버지는 낚시를 하고, 나는 그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아버지는 돗자리 위에 커다란 수건을 한 번 더 깔아주셨다. 그 위에서 난 종일 책을 읽었다. 아버지와 난 그리 말을 많이 나눈 것 같지도 않다. 엎드려 책을 읽다가 두 팔이 뻐근해지면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늘에다 책을 대고 읽기도 하였다. 어두워 지면 아버지는 랜턴을 켜 주셨다. 사방은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르게 짙은 쪽빛으로 물들어 가고, 어느 새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릴 때 즈음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마 ‘이 녀석,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제 읽을 만큼 읽었나 보다’고 여기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 이렇게 보냈던 시간이 내게 무엇이 되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알 수도 없었을 거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특히 아이들이 사춘기에 다다랐을 때, 엄마를 마치 소 닭보듯 하며 잔소리나 꾸지람에 주먹을 불끈 쥐며 자기 주장을 하거나 쾅 소리 내며 방문을 닫을 때,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은 그만 두어야 할지 모를 때, 아버지와 보냈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길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자식인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던 그 마음, 어두워 졌을 때 랜턴을 켜주시던 그 손길. 우리 아이들에게도 부모로 그것만 있으면 되니 두려워하지 말자고 끊임없이 불안해 지던 내 마음을 달랬었다.

아이와 부모의 삶은 다르다. 이 냉정한 현실 앞에서 아버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식 곁에서 조용하고 따뜻한 지원군이 되어 주셨다.

아버지처럼,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면 될 것이라고, 아이들이 삐죽거리는 것도 분명히 지나갈 시간이 올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각해 보면 엄마인 내게 눈을 부릅뜨며 악다구니를 썼던 사춘기 시절의 아들이 있어 부모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상담이나 강의 때 부모의 마음을 잘 공감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강의 평가도 높았던 것 같다.

아버지 기일과 한가위가 닿아 있어 꽤 긴 시간 제주에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어머니와 영화도 보고 함께 외삼촌 댁에 가기도 했다. 종종 나를 봐 온 외삼촌께서 문득 나의 웃음을 보시더니 “근래 많이 명랑해졌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이번 제주일보의 칼럼 제목은 ‘명랑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 ‘명랑’의 근원에는 뭐니뭐니 해도 서툰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성년에 닿은 아이들의 존재 덕분이다. 엄마여서 아이들이 내 앞에서 보였던 실험들(반항)이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 작업이었음을 이제 비로소 느낀다.

이번 추석만큼 감사하다는 말의 무게를 느껴본 적인 없는 듯 하다. 고향을 떠나 육지에 사는 언니, 오빠를 대신하여 늘 궂은일 도맡아 하는 막내 동생의 노고를 이제야 진정으로 느끼다니 참 무심한 언니다. 동생에게 손을 잡으며 이야기 했다. “고맙다”고.

더 늦게 전에, 늦었다고 아쉬워 하기 전에 더 많이 명랑하게 말해야 겠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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