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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오름 품에 안긴 집들…한 폭 그림 같아"
"저지오름 품에 안긴 집들…한 폭 그림 같아"
  • 제주일보
  • 승인 2017.10.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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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14-1코스(저지~서광올레) - 저지마을회관~문도지오름(5.1㎞)
망고동에서 본 저지오름.

[제주일보] # 저지마을의 변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라고 부임을 꺼리던 저지마을. 이번 대중교통 개편으로 한 번 더 갈아타야 가는 곳이 돼버렸지만,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 오래다. 올레 14-1코스 출발점에서 길 건너 골목길로 접어드는 곳에 세운 산뜻한 마을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지오름을 비롯해서 골프클럽, 도립현대미술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생각하는 정원, 방림원, 환상숲 곶자왈공원, 유리의 성 등 이미 잘 알려진 굵직굵직한 관광명소와 시설이 소개됐다. 2012년 8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4호’로 지정됐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차로를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선다. 봉숭아꽃 씨방은 이제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 것처럼 부풀었고, 접시꽃은 벌써 잎사귀가 커졌는데 안타깝게도 벌레가 많이 갉아먹었다. 옛 집터에는 새로운 형태의 예쁜 집들이 들어섰고, 감귤은 점점 더 노란빛을 띠어간다.

비닐하우스도 많고 더러는 후박나무, 황칠나무, 굴거리 같은 묘목도 심었다. 옛날 같으면 소나 말이 지나다녀 어림도 없을 텐데, 양쪽 길섶에 콩을 심어 제법 실하게 여물었다.

 

# 알못을 지나 망고동으로

골목길을 나와 큰길 용금로와 만나는 곳에서 ‘알못’을 만났다.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만 연못인데 빌레 끝에 물이 고였다. 옛날 중산간 마을은 물이 고이는 곳마다 못을 파고 가능한 한 물을 많이 저장했다.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를 해결하는 한편, 가축에게 먹이고 나아가 방화수로도 이용됐기 때문이다.

지난 번 방송 촬영 때 들은 바로는 저지리에 이런 못이 거의 20여 곳에 이른다고 했다.

이곳은 그 중 원생태가 잘 남아 있어, 제주시에서 복원한 습지 7곳 중의 하나라 한다. 조그만 정자도 세웠고 수련도 제법 넓게 퍼졌다.

알못에서 망고동을 지나 마중오름 남쪽 강정동산까지는 드문드문 집들이 흩어져 있고, 대부분 농지다. 벌써 감귤과 콩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양배추나 무 등은 이제 제법 초록빛을 띠어 싱싱해 보인다. 꽤 너른 면적을 차지한 남양홍씨 종친회 공원묘지 앞에서 마을을 돌아보니, 저지오름의 품안에 안긴 집들이 무척 안온해 보인다. 그 앞으로 익어가는 콩의 노란빛과 밭담이 얼려 한 폭의 그림 같다.

 

저지곶자왈 나무 위의 칡.

# 저지곶자왈

조금 더 걸으면 저지곶자왈이다. 빌레가 많은 듯 나무는 그리 키가 크지 못해 온통 칡넝쿨로 덮였다. 멀구슬나무, 팽나무, 졸참나무 같은 곳에 올라간 칡덩굴이나 환삼덩굴들은 꼭 코끼리 같다. 아니 기린도 있고, 낙타도 있다. 과거에는 칡잎사귀가 나오는 족족 마소가 뜯어 먹고, 그 뿌리를 캐는 사람들이 있어 좀 덜했는데, 요즘 돌아다녀 보면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인간이 일일이 간섭할 수는 없는 일.

삼나무나 편백나무를 심어 소나무와 같이 자라는 곳도 있고, 조금 지나면 잡목이 섞였다. 팽나무와 예덕나무, 종가시나무, 곰의말채, 멀구슬나무, 꾸지뽕나무, 상동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칡덩굴이나 환삼덩굴, 청미래덩굴, 거지덩굴을 두르거나 한데 얼려 온통 초록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몇 년 전 늦은 봄에 이곳을 걸으며 상동을 따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막 검게 익어가는 머루를 발견하고 서너 방울 따 입에 넣었더니, 이내 터져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여우콩.

# 여우콩과 여우팥

가시덤불 위에서 콩깍지가 빨갛게 익은 여우콩을 발견했다. 더러는 벌써 콩깍지를 까 벌리고 까맣게 윤기 나는 알을 두 개씩 내보이고 있다. 이맘때면 보기가 좋아서 사진작가들에게 인기다. 골다공증, 허약체질, 황달에 좋다고 하며, 약용이나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여우콩’은 잎사귀가 여우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같은 과 식물이면서 잎이 비슷한 ‘여우팥’이 있다. 주로 민간에서 피부질환에 쓰는데, 꽃과 열매는 여우콩과 판이하다.

그런 점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닮았다고 생각해 여기 소개해 본다. 우선 그 꽃이 다르다. 여우콩은 피는 듯 마는 듯 꽃잎이 잘 펴지지 않고 노란색도 도드라지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반면 여우팥은 꽃잎을 동그랗게 펴고, 노란색으로 도드라져 벌과 나비에게 인기다.

하지만 열매에 이르러서는 정반대다. 여우콩은 빨간 껍질에 까맣고 윤기 나는 열매가 도드라진다. 그러나 여우팥은 6~8알이 들어 있는 커다란 깍지 속에 부실한 알맹이만 담고 있다. 젊었을 때 반짝했다 별 볼일 없어진 사람과 젊어서 고생 끝에 알찬 결실을 맺어 존경받는 사람으로 대비해본다.

 

# 문도지오름

문도지오름에 다가섰다. 금악리 지경이지만 바로 안덕면과 경계를 이루는 표고 260.3m, 비고 55m, 둘레 1335m의 나지막한 오름이다.

산 정상 쪽 안테나 밑으로 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름내 말을 놓았는지 민둥산으로 변했고, 말이 먹지 않는 것들만 남았다. 말굽형 분화구에는 가시덩굴이 우거진 사이에 물이 조금 고여 있다. 능선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기에 알맞은 오름이다.

사방은 온통 저지곶자왈로 둘러싸였는데, 북동쪽 곶자왈이 끝나는 곳에 풍력발전기 7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한라산은 물론 그 아래로 펼쳐진 오름군과 가까이 정물오름, 당오름, 도너리오름 들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저지오름에 안긴 저지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맞은편으로 내리려는데, 그늘 속에 서 있는 말들이 길을 막고 있다.

“이 녀석들. 올레꾼들이랑 놀래게 하지 마라이”하며 갈기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길을 걸을 때 말을 만나면 차이는 수가 있으므로 앞으로 지나가야 한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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