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소소한 대화 인생의 감칠맛 선물…새삼 가족의 무게 느껴
밥상머리 소소한 대화 인생의 감칠맛 선물…새삼 가족의 무게 느껴
  • 제주일보
  • 승인 2017.10.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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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텅빈 냉장고·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제주일보] ▲텅 빈 냉장고-가에탕 도레뮈스 글

음식과 가벼운 인사만으로도 친분이 돈독해지는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텅 빈 냉장고’는 ‘음식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게 하며, 더불어 살아가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는 심사평을 받고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책이다.

길거리 악기 연주를 하며 살아가는 앙드레이 할아버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지만 말라 비틀어진 당근 세 개 뿐이다. 할아버지는 완두콩 몇 알이라도 얻을 생각으로 윗층에 사는 나빌 아저씨네 집으로 올라가지만 그 집 역시 달걀 두 개와 치즈 한 조각이 전부. 3층 리쉬 아주머니는 피망과 쪽파, 4층 클레르 아가씨네는 토마토밖엔 없다.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은 가지고 있던 재료들을 모아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 파이를 만들기로 한다.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동안 밖이 소란스러워 베란다로 나가보니 다른 아파트 사람들도 맨 꼭대기 층에서 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더 나아가 거리에, 광장에, 큰길가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 함께 먹을까요?”라는 이웃의 말 한마디에 나누어 먹는 기쁨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게 한다.

하얀 바탕의 그림책은 순식간에 다채로운 색감이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변화하면서 함께하는 일의 벅찬 희열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혼밥, 혼술이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추석 연휴만이라도 가족끼리, 친척끼리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나눠 먹는 일은 인생의 감칠맛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진승미 제주도서관 사서>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정성기 글

어쩌면 추석 연휴는 ‘가족은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라는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에 가장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날 아닐까? ‘가족들이 모두 모여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라는 추석선물세트의 광고에 나올법한 이상적인 그림의 이면에는 제사 음식 준비와 각종 잔소리에 시달리는 가족구성원들의 한숨과 짜증이 묻어있을 것이다.

이럴 때 ‘내다버리고 싶은’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를 9년째 참고 견디며 살고 있는 ‘스머프 할배’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이런 짜증과 고통이 조금은 희미해질 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는 65세 스머프 할배가 9년 동안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마주앉아 매일 삼시세끼를 지어먹으며 그 소회들을 담아낸 책이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차려드리고 싶어 각종 요리블로그들을 뒤져서 얻은 레시피들을 이와 소화능력이 약한 어머니가 먹기 좋게 창의적으로 변용시켜 한 그릇의 멋진 밥상을 만들어낸다.

얼핏보면 효자 아들과 어머니의 아름다운 동행기 같지만 이 책은 처절한 전투일지라고 보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이런 어머니가 징그러워 ‘징글맘’이라고 부르다가도, 어머니가 어디 불편하시기라도 할까 세심하게 살피며 돌보는 스머프 할배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 섞인 생활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가족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건너가세요’라는 말이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다독이며 정성들여 밥을 차리고, 그걸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예순다섯의 아들. 둘 사이를 붙여주는 끈적하고 들큰한 밥풀같은 사랑을 책 속에서 느껴보시길 바란다.

<강희진 제주도서관 사서>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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