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길 지나 종점까지 '고향 냄새' 만끽
아름다운 숲길 지나 종점까지 '고향 냄새' 만끽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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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13코스(용수~저지올레) - 낙천리~저지마을회관(7㎞)
아름다운 숲길.

[제주일보] 아홉굿마을 낙천리

술래잡기를 끝내고 좁은 길을 걸어 나오자, 눈에 익은 아홉굿마을 표지석이 나를 반긴다. 이태 전 방송 촬영 차 찾았던 곳인데, 마을의 곳곳을 돌아보며 받은 인상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곳이다. 높이 솟은 물통 그림에 나온 씨 뿌리는 아줌마의 모습도 그대로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낙천적으로 해석해 ‘하늘이 내린 마을, 또는 천 가지 기쁨을 가진 마을’로 여기고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을 ‘서새미’라 했는데, 이는 ‘서쪽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란다. 원래 분지형태라 물이 잘 고이는 땅이었는데, 마을에 대장간이 성행해서 좋은 점토를 많이 채취해버린 곳이 물웅덩이로 변했다. 그 웅덩이(굿)가 한 곳에 아홉 개나 몰려 있어 ‘아홉굿 마을’이 됐다는 얘기다.

 

의자 공원의 의자들(일부).

체험공간과 의자공원

주민들은 ‘오지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처음 생각해낸 것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자’는 데서 착안해 도시 사람들에게 마을의 주 작물인 오이, 파프리카, 토마토, 감귤 같은 농작물 수확체험을 하게하고 끝나면 건강한 먹거리 체험으로 보리피자 만들기, 보리빵 만들기, 보리수제비 만들기, 보리 샌드위치 만들기 등으로 이어가자는 계획을 세우고 2003년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 받았다.

그러는 한편,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의자제작에 들어갔다. 때맞춰 2009년 6월에 개장한 올레 13코스가 마을을 지나게 되면서 토지를 매입하고 공원을 만들어 천 개의 의자 하나하나에 이름을 달았고, 전국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별난 의자의 애칭을 공모하기도 했다. 입구에 있는 의자는 4층 규모의 동양 최대 의자로 공원의 상징물이 됐다.

기상천외한 이름의 의자를 일별하다가 ‘지상낙원’이란 이름을 발견하고는 얼른 가서 앉아 이름의 낭만을 즐기려고 신발까지 벗고 물을 마시니, 오전 10시30분이다.

 

잣길 입구.

낙천리길 굽이돌아

의자공원에서 이어지는 ‘잣길’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화산 폭발에 의해 저지오름과 이계오름이 형성되면서 흘러내린 돌무더기를 농토로 조성하는 과정에 응선달이와 낙천리를 연결하는 통로가 만들어져 농공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온 길이다. 길의 옛 모습을 체험하게 하고 선인들의 지혜와 역경의 실체를 터득케 하며 문명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체험학습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제주시의 지원으로 2011년 11월에 886m를 복원하여 편입시켰다.’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돌아나가며 어렸을 소를 몰고 다니던 농로를 떠올렸다.

그 길을 나와 걷다가 비석이 쭉 늘어서 있는 곳이 있어 살펴보니, 옆의 절 흥법사를 재건할 때 도운 신도들의 송덕비들이다.

거기서 마을을 벗어나면 흙을 많이 모아 놓은 곳도 보이고, 자갈을 오름처럼 높이 쌓아 놓은 곳도 있다. 주변엔 대단위 농장들이 모여 있고, 번듯하게 이름을 단 간판을 세워놓은 걸로 보아, 아무래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정표에 나온 폭낭은 조수리의 보호수로 수령 약 400년에 수고 12m인데, 윗부분이 매우 강건해 보인다.

뒷동산 아리랑길

폭낭을 지나 얼마 안 있어 뒷동산 아리랑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제주올레’에서 새롭게 지은 이름으로 저지수동 뒷자락을 굽이굽이 오르는 길이다. 주변에는 밀감과수원도 보이고, 양배추 심은 곳도 보인다. 중간쯤에서는 비닐하우스 단지 뒤로 옹기종기 머리를 맞댄 시골집들이 보인다. 오름에 다가설수록 가족묘지로 보이는 무덤들이 많았는데, 모두 벌초를 말끔히 해서 단정하다.

가을을 맞은 오름 기슭엔 억새가 피어올라 때맞춰 부는 바람에 나부낀다.

 

‘여기는/ 떠도는 내 영혼의 꽃밭/ 나는 가난하여 빛깔이 없다// 들녘 휩쓰는 바람/ 울부짖는 손길에/ 모질게 자라 억세게 피었으니/ 누가 꽃이라 하랴// 가진 것이라곤/ 쓸쓸한 몸짓 뿐// 가을을 못 견디게 사랑하는/ 그대 마음 지피는 불씨를/ 깃발처럼 흔들며/ 떠돈다 마른 발길로’ -김순이 ‘억새의 노래 5’ 모두

 

닥모르오름 표지석.

저지오름에서 종점까지

‘닥모르오름’ 표지석에 이르렀다. ‘오름은 저지리에 자리한 표고 239m, 비고 104m인 분석구로 정상에 깊이 약 60m인 원형분화구가 발달해 있다’라고 썼다. 그리고 ‘저지오름’이란 이름은 닥나무(楮)가 많아서 ‘닥모르오름’으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오름 둘레에 200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숲길이 있는데, 그간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간벌을 많이 해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올레길은 주차장으로 진입해 둘레길을 거쳐 오름 능선으로 올라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그 길로 내려 그 유명한 숲길을 돌아내리도록 했다.

13㎞ 지점에서 돌계단을 통해 능선에 오르는 길엔 소나무를 주종으로 삼나무, 후박나무, 육박나무, 예덕나무, 천선과나무, 팽나무, 참식나무 등이 보이고 능선길도 비슷한데 그늘에 자금우, 상산, 무릇 등이 눈에 띈다.

정상에 목재를 이용해 높이 설치한 전망대에 올라 쉬며 사방을 조망한 다음, 분화구로 통하는 나무 계단으로 내려가 식생을 살펴본다. 참느릅나무, 참식나무, 예덕나무 등에 오른 환삼덩굴, 거지덩굴, 머루, 으아리, 사위질빵, 하눌타리 같은 덩굴식물이 주를 이룬다. 다시 오르니, 능선에 오름 이름의 단서가 되는 닥나무 무리가 있었다. 천천히 내려와 아름다운 숲길과 마을길을 통해 올레 종점에 이를 때까지 고향 냄새를 한껏 맡으며 걸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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