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가을 달빛 가장 좋은 밤, 情이야 변할손가
[추석특집] 가을 달빛 가장 좋은 밤, 情이야 변할손가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7.10.04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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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추석 풍속도…나홀로족 증가·차례상 풍경 변화

별 많은 밤

하누바람(하늬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청시(靑枾, 푸른 감) 

- 백석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백석 시인의 ‘청시(靑枾)는 아주 짧은 시임에도 고향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캄캄한 밤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불어 온 하늬바람에 깊은 정적을 깨고 감나무에서 풋감이 떨어집니다. 마루 밑에서 잠자고 있던 개도 인기척인줄 알고 놀라 짖는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 고향의 깊은 밤을 표현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지금은 잊혀진 시골 고향의 정서가 다가온다.

▲나홀로족 증가…달라지는 풍속도=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추석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의 정(情)을 나누는 자리이다.

하지만 1인가구가 늘고 핵가족화가 이뤄지면서 일가친척들이 모여 정을 나누는 추석 명절도 많이 변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찾아 ‘역귀성’하는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혼술’, ‘혼밥’ 문화가 일반화된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고향을 찾기보다 연휴기간 홀로 여행을 떠나거나 취미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는 이처럼 추석을 혼자 보내는 ‘나홀로족’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명절 연휴에 가족과 친지끼리 모이는 대신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은 단연 1순위다.

특히 올해는 최장 10일간의 연휴가 이어지면서 제주를 비롯한 국내는 물론 사상 최대 인원이 해외여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정주행’(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한 번에 몰아보는 시청 행태)하기도 하고, 취업 공부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차례상에 치킨·피자=추석하면 온 가족이 둘러않아 송편을 빚는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핵가족화로 명절에 모이는 가족의 인원이 많지 않은데다 입맛도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어 송편 빚기는 서서히 옛 풍경이 되고 있다.

매년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던 가정주부는 물론 맞벌이 부부들에게 명절 차례상 준비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가족끼리 갈등을 빚고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례상을 주문하거나 명절 음식 일부를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등에서 구입해 차례를 준비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

일일이 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비싸지 않은 것도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가족들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조상을 기리는 날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차례가 가족과 차례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날이라는 실용주의적인 의미가 확산되면서 설 차례상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차례상에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은 물론 피자와 치킨 등이 올라오는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만은 않다.

또 차례상에 올릴 음식만 간단히 준비한 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외식을 하는 경우도 많아 상당수 식당과 배달음식점들은 추석 연휴에도 영업을 한다.

▲차례 뒤 나들이·양지공원 추모 이어져=명절 때 시댁이나 친정에 머물던 관행에서 벗어나 차례를 지내고 여행이나 영화관람, 쇼핑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핵가족화로 친척·친지들이 많지 않고 가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짧게 차례와 성묘만 하고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거나, 쇼핑 등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 제주의 장례문화가 매장 중심에서 화장 중심으로 바뀌면서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제주 양지공원을 찾아 조상을 추모하는 도민들도 늘고 있다.

제주도는 오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양지공원 개방시간을 기존보다 1시간 앞당겨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또 임시분향소 2개소도 추가 설치한다.

제주도는 이 기간 2만여 명의 추모객들이 양지공원 ‘추모의 집’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친환경 자연장지인 한울누리공원을 찾는 후손들의 발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추석(秋夕)은 글자대로 가을 저녁,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의미다.

세태가 변한다고 해도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에 고마운 사람, 그리운 사람과 정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가장 좋은 밤, 가장 좋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날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인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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