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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도전" 휠체어육상 아이콘으로 우뚝<7. 홍석만> 현역선수, 특수체육 연구자, IPC 위원 3역...장애인체육 발전에 기여할 것
김현종 기자 | 승인 2017.10.01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아이콘인 홍석만이 지난달 27일 제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일보=김현종 기자] “시련은 있어도 결코 포기는 없습니다. 우직하게 노력할 뿐입니다.”

홍석만(42)은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원동력으로 성실과 끈기를 꼽았다.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 커피숍에서 만난 홍석만은 “내 성취는 노력을 빼면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며 “오로지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인 특유의 강인한 정신이 읽혔다.

멈추지 않는 도전의 삶=지체장애 1급인 그는 일도초를 나와 경기도 안산 특수학교인 명혜학교로 진학해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열린 패럴림픽 매스게임에 참여했다. 휠체어를 타고 사람들 앞에 처음 섰다.

휠체어육상을 접한 홍석만은 1996년 제주산업정보대학(현 제주국제대) 1학년 때 대구에서 열린 휠체어마라톤대회에 출전해 5㎞ 1위를 차지한 이후 국내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99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 메달을 꿈꿨다. 돌아보면 당시 자신에게 휠체어육상은 레크리에이션 차원이었지 스포츠가 아니었고, 그저 그런 선수였다고.

홍석만은 “그때만 해도 운동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즐기는 대상이었지 전문선수에 대한 마인드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2000년 패럴림픽 출전이란 꿈은 좌절됐다.

그해 운동에 대한 회의가 부쩍 밀려들었고 실제로 2년간 휠체어육상을 떠났다.

2002년 부산 아시아장애인경기대회를 앞두고 선배의 권유로 마지못해 다시 경기용 휠체어에 올랐다. 겨우 2달 훈련 뒤 출전한 선발전은 가혹했고, 그나마 커트라인에 걸려 대표로 뽑혔다.

홍석만은 “한국 장애인체육에서 일대 사건인 대표 팀의 훈련 거부현장에 있었다”며 “대회 성적은 당연히 안 좋았다. 계주에서만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허전한 느낌이 컸다”고 했다.

세계 스타의 반열에 오르다=2002년은 홍석만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였다. 홍석만은 앞서 2001년 서귀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 입사했지만 존재감도 없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느낌에 고민이 깊던 터였다.

홍석만은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운동을 계속할 지 그만둘 지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며 “결국 휠체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선택했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홍석만은 목표점과 롤 모델 선정에 심혈을 쏟았다. 목표는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메달, 모델은 부산 대회 톱클래스 선수들로 설정했다. 미국 친구에게서 그들의 훈련사진도 받았다.

그는 매일 퇴근 후 제주종합경기장 트랙을 찾아 야간조명 아래 3시간씩 땀을 쏟았다.

“낡은 휠체어를 뜯어 고쳐 운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무척 어색했습니다. 어쨌든 잘하는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맹목적으로 따라했어요. 트랙 100m 전방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작을 반복적으로 체크하고 다시 고치고 숙달시켰죠. 어느 순간 감이 오기 시작했어요.”

결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홍석만은 2003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으로 우승한 후 2004년 같은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럴림픽 메달이란 목표도 초과 달성했다. 홍석만은 아테네 패럴림픽에서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4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휠체어육상의 깊이를 알게 된 홍석만은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준비에 나섰다.

2007년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스위스 그랜드프릭스에 출전한 그는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여세를 몰아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400m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올해 장애인체육대회 3관왕을 포함해 지금까지 그는 금메달 52개와 은메달 12개 등 63개 메달을 수확했고, 한국 신기록 3개와 대회 신기록 10개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혹독한 시련…우직함으로 극복=2010년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홍석만이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4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일본팀의 항의로 등급 분류 재심사를 받았다. T53에서 T54로 등급이 변경됐다.

T54는 장애가 가장 경미한 선수들의 경기등급으로 홍석만의 주력 종목이던 400m만 해도 두 등급 간 기록이 4초가량 벌어지는 탓에 선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말이 돌았다.

홍석만은 “그땐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겸허히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면서도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돌아봤다.

운동을 관두면 ‘그동안 등급을 거짓으로 받아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할 테고, 등급이 바뀐 후에도 메달을 따면 ‘거봐라, 등급을 속였다’는 말이 나돌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우직하게 그 동안 하던 대로 열심히 노력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진실한 모습을 언젠가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만큼 자극제가 됐고 겸손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즈음 홍석만은 특수체육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스포츠코칭 전공 석사와 특수체육 트레이닝 전공 박사학위를 차례로 취득했다.

1인 3역, 도전은 계속된다=올해 5월 홍석만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75차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회에서 IP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대한민국 1호다.

한국은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과 홍석만 IPC 선수위원을 보유하고 있다. 둘은 11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및 IPC 선수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조우할 전망이다.

휠체어육상 현역선수이자 특수체육 연구자, IPC 선수위원이란 1인 3역을 수행 중인 홍석만은 제2의 목표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장애인스포츠 트레이닝 체계를 구축하고, 고향 제주의 장애인체육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것이다. 선수로선 1~2년 내 은퇴할 생각이다.

현재 한국체대에서 특수체육 트레이닝을 연구하는 그는 “장애인선수에 대한 체계적 육성과 장애인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고, IPC 선수위원으로서 “장애인선수 권익 대변에도 앞장서겠다. IPC 차원 어젠다와 무브먼트 등에 대한 대처방안 마련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홍석만은 “고향 후배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싶다”며 “제주 장애인체육 시스템 전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선수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의 궤적을 찬찬히 복기하던 홍석만은 제주인의 유전자(DNA)를 꺼냈다.

“제주인은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개척하면서 강인한 DNA를 얻어 대대로 이어온 것 같습니다. 제주인이 우직하게 노력하면 그 무엇도 못할 게 없다고 확신합니다.”

홍석만은...

1975년 제주시 도두동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도초를 나와 경기도 안산 소재 특수학교인 명혜학교를 다니다가 제주사대부중으로 전학한 후 제주중앙고와 제주국제대를 졸업했다.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코칭 전공 석사학위와 특수체육 트레이닝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올해 IP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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