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박미예 기자] 몇 달 전, 꽤나 더운 여름날이었다.
길을 걷다가 뜨거운 열기에 질려 편의점 근처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천천히 편의점으로 다가왔다.
잠시 멈춰 서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던 남성은 편의점에 막 들어가려던 초등학생을 불러 세웠다.
“아저씨가 이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서 그런데 물 한 병만 사다줄 수 있어요? 잔돈은 심부름 값으로 줄게요. 고마워요.”
그때까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편의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넘어서야 했다.
이 더운 날 편의점에서 물 한잔을 사 마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당시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천천히 길을 걸으며 살펴보니 시내에 휠체어가 쉬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나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떨려왔다.
공공기관은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해놓지만, 일부 시설은 경사가 가팔라 실제 이를 이용하는 분들을 보며 마음이 졸아들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인 교통복지 정책’임을 천명한 제주형 대중교통체계 개편도 이 같은 점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제주 및 서울지역 9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도 장애인 이동권 제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대중교통 이용이 가장 절실한 교통약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한 데 따른 것이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제주’를 쉽게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자립적인 삶이 아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 근처 가게에서 물 한 잔 사 마시는 일이 도민 모두의 당연한 일상이 되는 제주도를 꿈꾼다.
박미예 기자 my@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