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꼬메 오름의 주말 산행
노꼬메 오름의 주말 산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2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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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요즘 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적폐를 둘러싼 불안정한 정치권, 인륜을 저버린 몰지각한 폭력과 살인들, 핵무기 실험으로 인한 안보불감증과 막말들로 여느 때와 달리 힘든 날들을 보내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사건들을 목격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의 삶이 넉넉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주말 오후, 가을 소슬바람은 나에게 일탈을 주문한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떠나는 길에 정해진 목적지나 복잡한 준비로 부산을 떨 필요가 없다.

산행은 고단한 심신의 무게를 지고 떠났다가 모두 버리고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냉수 한 병에 보온 물통과 커피, 과일 두서너 개 담으면 그만이다.

큰노꼬메 오름이다. 실바람에도 한들거리는 억새꽃들이 가을을 실감케 한다. 가을 산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과 잿빛 하늘을 넘나드는 높은 조각구름들, 옅은 물감으로 그려지는 백록담의 위용과 곡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직은 물들지 않는 푸름,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름이다. 용암의 분출로 절개된 모습은 마치 찾아오는 이들을 껴안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가온다.

산행을 위해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소란스럽다. 이유인 즉 벌초객들이 마을목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관리책임자가 저지하는 데에서 일어난 일이다. 말 목장 안의 규칙과 벌초객들의 이동에 대한 편리와의 마찰이었지만, 서로 간의 이해로 간단히 끝났다.

팔월 초하루가 갓 지난 주말이라 산과 들에는 예초기 소리에 놀란 노루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갑자기 찾아든 불청객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로 들린다. 추석을 앞둬 소분을 하지 못하면 조상에 대한 불효라고 여기기에 민초들의 발걸음은 쉴 날이 없다. 벌초는 어쩌면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있는 자의 스킨십이며 영혼과의 대화이기도 하지 않을까.

소분을 끝내고 한 잔의 술을 올리는 후손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인사말이 궁금하다.

보내고 싶지 않았던 생전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혹자는 보름달이 뜨는 날 밤 부모의 산소를 찾아가 제주를 올리고는 한참 동안 넋두리를 하다가 돌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마치 부모를 만난 것처럼. 영혼은 잠시 머물다가 다시 떠나 흐르는 바람인가.

벌초객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족묘지 담벼락에 하얀 꽃망울의 으아리가 눈길에 들어왔다. 위령선이라고도 하는 으아리는 관절염이나 풍습에 사용되는 한약재이기도 하다. 덩굴식물이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자신의 꽃을 피우는 게 얄밉기도 하지만 그도 나름의 생활방식이 아닌가.

으아리는 무슨 바람에 날려 이곳으로 왔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다니다가 자신의 무게감으로 떨어졌을 게지. 허공을 맴돌던 지친 바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일은 아니다. 바람이 잠시 머물던 순간 그의 삶은 시작됐을 뿐이다.

가을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인가 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삶의 시간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으아리 꽃잎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가을 산행은 너무도 앞만 보고 외롭게 달려왔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풍족함을 알게 해 준다.

노꼬메 정상에 부는 바람이 싱그럽다. 누군가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이 귓전을 울리고 있다. 바람은 지나온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삶이란 한줄기 바람처럼 지나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머무는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살며시 떠나는 것이 아닌가. 괜스레 가욋길에서 허황된 욕심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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