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과 맹자
내로남불과 맹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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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1996년 15대 총선 직후에 나온 말이다.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의 ‘의원 빼가기’에 대해서 야당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자 헌정사상 최장수 대변인이자 희대의 명대변인으로 손꼽히던 당시 여당의 모인사가 ‘내로남불’로 응수했던 것이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의 창작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그 덕분에 정계 은퇴 즈음해서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패러디가 유행하기도 했다.

“내가 하면 딸 같아서 쓰다듬어 준 것이고, 남이 하면 성추행이다.”

실제로 이 말은 본래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형태로 1990년대에 유행하고 있었다.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들이미는 이중잣대를 꼬집는 말로 말이다.

여당과 야당이 바뀐 덕분에 ‘내로남불’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2015년 7월 당시 야당에서는 국회 내 여야 갈등의 원인이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당시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누리꾼들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유행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광장의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을 겪으면서 이 말은 그러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상대의 실체를 드러내는 말로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 말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깨닫고 있었건 아니건 비난받을 일을 했던 것이 밝혀졌을 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적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맹자 공손추 하편에는 맹자가 진가(陳賈)라는 제나라 대부의 변명을 꾸짖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제나라의 선왕은 2년 전 합병했던 연(燕)나라가 태자 평(平)을 옹립하여 왕으로 삼아 저항하자 연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뽑아 왕으로 세우고 떠나라고 조언했던 맹자를 보기가 민망하다는 심정을 측근에게 토로했다. 그러자 당시 대부였던 진가는 제선왕이 주공(周公)보다 어질고 지혜롭다고 자처할 수 없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심지어 맹자를 만나서 왕을 변호하겠노라고 자신한다. 주공은 주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만든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공자와 맹자보다 성인으로 손꼽히던 인물이니 그럴 듯한 말이었다.

맹자를 찾아간 진가는 “주공이 어떤 인물이냐?”고 묻는다. 맹자는 “성인이시다”라고 잘라 말했다. 진가는 맹자를 몰아세운다. “주공께서는 그의 형이 되시는 관숙에게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오히려 은나라를 기반으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의 대답은 담담하다. “그러하다[然].” 진가의 반문이 정점에 이른다. “그렇다면 주공께서는 장차 반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그러신 것입니까? 모르고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알았다면 불인(不仁)한 것이요, 몰랐다면 무지(無知)한 것이다. 청문회장에서 이 딜레마에 빠진 전정권의 고위공직자들이 선택했던 모범 답안은 맹자에게서 나왔다.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진가는 뼈아프게 추궁한다. “성인(聖人)도 잘못을 저지릅니까?”

맹자의 대답은 노련하지만 처절하다. “주공은 관숙의 아우이지만 어찌 허물이 없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옛날 군자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 군자라는 이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을 계속하는구나.” 맹자는 좀 더 매섭고 분명하게 다그친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백성들이 그것을 모두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허물을 고치면 당연히 우러러 보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것을 모르고 잘못을 계속 저지를 뿐만 아니라, 뒤이어 남에게 변명까지 하는구나.”

성인도 잘못을 저지른다. 이 사실이 우리들의 잘못을 변명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준열해야 한다. 하지만 비판도 반성이라는 걸 해가면서 하면 좋겠다 싶은 이들도 있는 법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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