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과 유리천장
깨진 유리창과 유리천장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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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이사/논설위원

[제주일보] 자동차가 넘쳐나는 요즘 주택가 골목을 지나다보면 오랫동안 방치돼 있는 자동차를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자동차들을 보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방치되어 여기저기 패이고 부서진 자동차 한 대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할 수도 있어서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 작동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도시의 뒷골목에 멀쩡한 자동차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일정 기간 방치해 놓았을 때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쪽이 훨씬 더 많이 망가진다는 데에서 비롯된 이론이다.

문제는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곳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만든 개념이다. 이 이론은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법칙을 적용하면 도시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주변의 깨진 유리창들을 치워서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이 법칙에 착안하여 도시를 갱생시킨 사례도 있다. 1980년대 뉴욕시는 범죄 발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건장한 사람도 밤길 다니기가 무서운 도시였고 여행객들에게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공공연히 안내할 정도였다.

1995년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시장은 도시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범죄를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얼마 후 엉뚱하게도 줄리아니는 도시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은 스프레이로 벽에다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 그라피티 때문에 도시 전체가 낙서판 같았다.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서 이런 낙서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범죄를 줄이라 했더니 청소나 한다면서 시민들이 비아냥거렸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낙서 지우기에 더욱 몰두했다.

드디어 낙서가 지워지고 도시가 깨끗해지자 거짓말 같이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접한 줄리아니가 이를 도시 갱생에 적용한 것이다.

사례에서 보듯이 이 이론을 적용하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방한해서 어느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남녀의 경제활동참가율 차이가 현재보다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경제가 9.8% 더 성장할 수 있단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여성의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5년째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리천장은 여성의 사회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남녀경제활동 참여 비율, 고위직 여성 비율 등을 계산해 산출한다.

올해 발표된 자료에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세계경제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평등지수는 2012년에 세계 108위였는데 지난해 116위로 후퇴했다. 이러한 남녀 간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미래의 성장을 실현할 수 있다고 IMF 총재가 강조한 것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자유로운 사회, 남녀의 성차별이 없는 사회가 미래 성장의 핵심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유리천장을 없애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유인할 수 있는 여러 정책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가부장적 사고, 남성 우월적 사고, 아들에 대한 편애 등 우리 주변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인식의 깨진 유리창들을 제거해야 유리천장이 없어진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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