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죽으라는 서귀포
아프면 죽으라는 서귀포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9.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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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기자] ‘빈축을 사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 말은 말 그대로 남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쯤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를 들여다 보면 ‘사정’이 있다.

빈축(嚬蹙)을 한자로 쓰면 어지간한 한자실력의 사람조차 읽기 어렵다. 찌푸릴 빈(嚬)과 찡그릴 축(蹙)이라는 단어다. 통용되는 이 말의 유래는 중국 춘추시대로 거슬러 간다. 당시 월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살았다. 위장병에 시달린 서시는 병세가 나타나면 손으로 심장 근처를 누르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사람들은 이런 서시의 약점까지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그런 서시가 사는 이웃 마을에 동시(東施)라는 여인이 살았다. 여러 문서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동시는 ‘아주 못생긴 여자’로 알려진다. 그런 동시가 서시를 흉내 내 두 손으로 심장을 누르고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슬금슬금 동시를 피하고 욕했다. ‘빈축을 사다’라는 말은 이렇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귀포의료원이 언제부턴가 이 단어를 연상시키는 의료기관이 됐다.

#‘C등급’ 판정의 결과물

서귀포의료원은 대한민국 최남단 거점공공병원이다. 서귀포의료원은 동시에 한라산 남쪽지역인 제주 산남 공공의료의 중심축이다. 그런데 산남 주민들의 기대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 살려야 하는 의료기관이 지역 주민들에게서 지워진다는 것은 ‘죽을 사람은 치료도 하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서귀포의료원의 실상은 보건복지부 평가 결과 증명된다.

지난해 복지부의 전국 39개 지역거점병원 평가 결과 서귀포의료원은 상위 20%에 해당되는 ‘A등급’은 고사하고 차 상위 40%인 ‘B등급’에도 끼지 못했다. 하위 40%(‘D등급’ 10% 포함)에 해당하는 ‘C등급’에 이름을 올렸다. 누가 보더라도 ‘수준 이하’다.

서귀포의료원 응급의료센터는 한때 응급의학 전문의 6명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의사들이 집단 사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 중 4명이 짐을 싸고 나가버린 것이다. 지난달 충원이 돼 지금은 6명의 의사가 응급의료센터를 이어가지만 주민들은 미덥지 못하다.

이 결과는 현실이 됐다. 올 6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간 서귀포소방서 관할 5개 구급대가 이송한 환자 1617명 가운데 257명이 서귀포의료원을 외면했다. 지척에 서귀포의료원을 놔둔 채 한라산 건너편 제주시로 달렸다. 한라산을 횡단하는 5·16도로 굽잇길을 달리면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애간장을 태웠음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도의회가 불신자초

서귀포의료원이 제 위치를 찾으려면 ‘양질의 의료진’ 확보가 답이다. 물론 ‘응당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겠지만 제주사회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적어도 제주에서 만큼은 내로라 하는 의료진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믿음직한 의료진이 있다면 서울은 물론 외국까지 찾아가는 게 우리네 아픈 사람들이다.

서귀포의료원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책임이 크다. 그들은 쫀쫀하게 의료진 급여나 트집 잡으면서 ‘밴댕이 소갈딱지’를 자청했다. 애초부터 ‘통 큰’ 발상이나 생각은 없었다. 하다못해 산남 출신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이라도 나서야 하는데, 이들조차 아플 것을 대비해 서울이나 제주시 병원을 기억에 저장했다.

지난달 서귀포 인구가 1188명 늘어 월 단위로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제주시 증가 인구 776명보다 많아 서귀포시가 처음으로 제주시를 인구 증가 면에서 이겼다. 이게 아니어도 산남 의료 수요가 늘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그 중심이 서귀포의료원이라는 데 또한 이의가 없다. 문제는 치유책이 이처럼 눈에 보이는데 누구 하나 이 ‘처방전’을 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주일 전 열린 제주도의회의 서귀포의료원에 대한 현안 보고에서조차 외면당했다. 산남 지방의원들까지.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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