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의 초대, 제주4·3의 정명(正名)
은평구의 초대, 제주4·3의 정명(正名)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09.2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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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가 조선적 김석범 선생을 서울로 초대했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생을 선정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언저리에서 서울을 찾았던 선생은 꼭 30년만에 서울땅을 밟았다. 광화문 근처에 숙소를 잡은 선생은 ‘뜨거웠던’ 촛불이 넘실댔던 광장을 보며 말씀도 하셨다. 2015년 대하소설 ‘화산도’(火山島)가 드디어 한국어로 출판돼 서울에서 열리기로 했던 기념심포지엄이 당국의 입국 불허가 아니었다면 선생의 서울 방문은 2년 앞당겨졌을 것이다.

1925년 재일 조선인으로 태어난 선생의 국적은 ‘조선적’이다.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다. 선생은 자신의 문학세계에 대해 “문단에서도 그렇고 조국의 남과 북과도 대립, 협곡당하는 오랜 세월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 냉혹한 협곡에서 선생은 1976년부터 1997년까지 20여년간 일본을 ‘문학계’에 글을 써내려갔고 그것이 12권 ‘화산도’다. 재일조선인들을 철저하게 외면하려 했던 일본사회에서도 화산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오사라기지로상(1984년), 마이니치예술상(1998년)을 수상했다.

30년만에 서울을 방문한 선생에게 독자들은 집요했다. 시상식에 이어 다음달 이어진 심포지엄이 끝나서도 독자들은 소설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소설의 무게만큼이나 독자들은 ‘4·3의 실체’를 놓고 역사와 소설의 간극에서 질문들을 던졌다. 아흔이 넘은 노작가의 대답이 이어졌고 질문은 또 꼬리를 만들었다.

내년 70주년을 앞둔 제주4·3의 숙제들이 모두 나열되는 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70년이 지나도록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4·3에 대한 뼈아픔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은평구에서 4·3이라, 제주는 왜 아니냐”. 4월3일에만 제주에서 존재하는 국가추념일에 대한 송곳같은 질타다.

내년 70주년을 앞둔 제주4·3의 숙제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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