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의 문학,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
김석범의 문학,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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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논설위원

[제주일보]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1925~)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는 서울시 은평구청에서 제정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조국을 방문한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 2000년대의 한국문학사를 꼼꼼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학 관련 사안 중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면 지난 17일 DMZ 경기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등기해야 할 것이다.

작가 이호철(1932~2016)이 세상을 떠난 지 1주기를 맞아 제정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제정 취지에서 선명히 밝히고 있듯 “남과 북으로 분절된 민족의 대립·충돌·갈등을 문학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데 혼신의 힘을 쏟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한반도 내부에만 국한된 것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여성, 난민, 차별, 폭력, 전쟁 등속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문학적 실천”을 실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제정 취지에 부합하는 전 세계의 작가를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의 숙고 끝에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을 제1회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시상식장에서 김석범은 수상 소감을 통해 해방 공간의 혼돈에서 수립된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적 문제를 제기했다. 그동안 김석범이 그의 작품과 에세이 및 강연을 통해 이미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뚜렷이 제시해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2015년 제1회 제주 4‧3평화상 수상 때 김석범의 이러한 비판적 발언에 대해 당시 보수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문제 삼았다. 그래서 같은 해 그의 필생의 역작 대하소설 ‘화산도’가 한국어로 번역돼 이를 기념하는 문학심포지엄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던 김석범은 정부의 입국 불허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만큼 해방 공간의 뒤틀린 역사의 잘못을 준열히 꾸짖고 역사적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김석범의 존재를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권에서는 눈엣가시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일이다. 김석범은 ‘화산도’에서 해방 공간의 혼돈을 매의 매서운 눈으로 응시한다. 일제 식민주의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친일협력 잔재들이 앙금으로 남은 것도 모자라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주요 요직에 재등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더욱이 그 와중 친일협력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회주의로 전향을 하고, 또 다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 동지를 배반하는 기회주의자의 가증스러운 모습도 김석범은 결코 묵과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모든 해방 공간의 혼돈 속에서 이승만 정권이 미군정을 배후에 두고 국가권력을 참칭,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간주하여 무차별적 토벌을 실시한 그 야만적 만행에 대해 김석범은 그만의 ‘문학적 보복’을 단행한다. 해방 공간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친일협력자들에 대한 역사의 죗값을 작품 속에서 심문하고, 심지어 제주민중이 역사의 반역자를 심판한다.

이렇듯 ‘화산도’에서 보이는 해방 공간에 대한 김석범의 역사인식과 문학적 행동주의는 해방 공간의 실제 역사에서 단행하지 못하거나 유보했던 역사의 파행과 퇴행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에 대한 정당한 역사 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서늘한 깨우침을 상기시킨다.

이번 수상 소감에서 김석범은 힘주어 강조하였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 이뤄지는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해방 공간의 뒤틀린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그것은 내년 4‧3 70주년을 맞이하면서 4‧3에 대한 ‘역사의 정명(正名)’과 문제의식이 맞닿아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의 정명과 평화를 향한 김석범의 문학은 이렇게 세계문학의 소중한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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