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북극까지 지구 한 바퀴 ‘훌쩍’ 극한레이스 세계최고 ‘건각’
사막에서 북극까지 지구 한 바퀴 ‘훌쩍’ 극한레이스 세계최고 ‘건각’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09.18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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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트레일러너 안병식
남미의 안데스 산맥을 따라 달린 2015년 에콰도르 250㎞ 레이스 피니쉬 라인에서 안병식씨가 완주 메달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달리면서 여행하는 사람, 35일 동안 2350㎞를 달려 프랑스와 독일을 최초로 횡단한 트레일러너 안병식(44). 이집트 사하라 사막(250㎞), 칠레 아타카마 사막(250㎞), 남극(130㎞)과 북극점, 스페인 산티아고(800㎞), 히말라야(166㎞), 베트남 정글(235㎞) …. 그가 달린 거리는 지구 한바퀴를 훌쩍 넘는다.

 

러너에서 이제 대회를 조직하고 코스를 만들어가는 레이스디렉터로 변신한 안병식씨(44)는 제주에서 최고의 대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꿈을 안고 올해로 7년째 접어든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10월14~15일, www.transjeju.com)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안씨는 사색과 몽상을 즐기던 미술학도였다. 그런 그가 올림픽에서도 최고의 종목으로 꼽히는 42.195㎞의 마라톤도 아닌 오솔길과 마을길, 사막, 정글, 산맥, 남북극 같은 오지와 극한의 자연 위를 두 다리에 의존해 달리는 짧게는 4~5일, 길게는 한달 하루 70∼80㎞를 달리는 트레일 러너로 이끈 건 대학 시절 5㎞ 건강마라톤이었다.

우연은 늘 가볍게 찾아오지만 무겁게 눌러앉는다. 그가 한국인 최초로 고비사막 마라톤(250㎞)우승과 사막마라톤 그랜드 슬램 달성, 남극과 북극점 마라톤 완주, 프랑스-독일 최초 횡단 등 한국인 뿐 아니라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의 두 다리는 달리는 운명과 맞닥뜨렸다.

“학교에서 처음 5㎞ 건강마라톤을 뛰게 된 건, 군에서 제대한 뒤 대학시절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하던 무렵이었어요. 취업도 고민이었고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늘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었지요. 내 몸은 점점 혹사당하고 있었고. 젊음은 방황과 함께 하잖아요. 달리기는 일종의 내 몸을 위한 탈출구였던 셈입니다. 처음엔 5㎞도 제대로 뛰지 못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쳐버릴 것만 같았지요”

그가 방황하던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그렇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달려야 하는 뚜렷한 목표나 방향은 없었지만, 한발이 앞서나가면 다른 발이 자연스레 뒤따라와 아주 짧은 찰나동안 땅 위에서 느끼는 기분을 그는 ‘공중부양’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달리기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의 첫 시작은 2000년 제주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코스 도전이지만 3시간 37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고 2001년과 2002년 연이은 100㎞ 울트라마라톤대회는 그를 달리는 매력에 빠뜨려버렸다.

“바다수영 3.8㎞를 시작으로 싸이클 180㎞, 마라톤 42㎞인 2003년 제주국제아이언맨대회는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바닷물로 배를 채워 허겁지겁 나왔더니 다른 참가자들은 고가의 장비로 싸이클 코스를 이어갔어요. 저는 정말 형편없는 자전거였고, 겨우 마라톤을 이어갔죠. 그 대회를 계기로 체계적인 준비를 시작한 것 같아요”

2년 뒤 2005년 이집트 사하라 사막(250㎞) 대회를 도전한 그는 다음해인 2006년 중국 고비사막대회(250㎞)에서 일주일간 모래폭풍과 진흙, 해발 2000m의 고지대에서 겪는 강렬한 태양과 추위를 견뎌가며 달린 끝에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한국인으로선 첫 우승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이번엔 2개의 발톱이 떨어져 나갔다.

“내 생애 첫 1등이었어요. 사하라사막을 경험도 했고, 선두그룹에서 완주하자는 목표도 있었지만, 1등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대회참가비가 모자라 지인들에게 ‘장가보낸다 생각해라’ ‘선(先)축의금이라 생각하고 보태달라’고 했는데,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자신감을 얻은 그는 다음해 칠레 아타카마(250㎞) 대회와 남극(130㎞)과 북극, 베트남 정글 등세계 곳곳을 달리며 여행했다.

그는 달리면서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대회 참가비가 부족할 때면 대회 미디어팀 카메라맨 조건으로 달리기도 했다. 덕분에 함께 달리는 이들을 앞서가며 때론 뒤에서 선수들의 외로운 사투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가득한 베트남과 숨이 막힐 정도로 매연이 가득한 인도의 하늘, 얼굴의 땀이 금새 얼음으로 변해버리는 극한의 자연 역시 그의 기록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장 안타까웠던 대회에 대해 묻자 그는 2009년 유럽횡단 레이스였다고 했다.

“2년간 준비한 대회였는데….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정말 열심히, 대회를 위해 고된 훈련을 참아냈어요. 하지만 대회 3일 만에 발목을 접질려 더 이상 뛸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런 상황 자체에 너무 화가 나 있었고요. 달릴 수 없다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어요”

그가 대신 찾은 곳은 스페인의 산티아고였다. 15일간 천천히 800㎞를 달렸다. 아팠던 다리도 조금씩 나아갔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순례객들이 산티아고성당으로 한달 정도를 걸어가는 길을 그는 그렇게 달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또다른 방법’의 뛰는 길을 알려줬어요. ‘넘어지면서 배운다’는 의미를 거기서 진짜 배운 셈이죠”

2006년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이야기도 들려줬다. 선두그룹에서 달리던 그가 대회 셋째날 발이 완전히 부어올랐다.

“5명 중 아무도 먼저 달려가지 않았어요. 결승라인을 밟았는데, 5명의 얼굴이 우승한 것보다 함께 했다는 데 더 기뻐했던 표정들이었어요. 사막에서 ‘일등’보다 ‘친구’를 만난거지요”

그는 그날 좀 더 인간다워졌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하루 평균 8~9시간, 70~80㎞를 달리며 물과 식량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트레일러닝. 경기장에서 벌이는 1등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는 다른 맛을 분명 트레일러닝에는 있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함께 하고 싶어요. 한라산과 아름다운 해안선, 365개의 오름이 빚어낸 이 제주에서 트레일러닝의 참맛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에게 길을 가르쳐줬듯 제주돌, 제주 흙 한줌에도 트레일러닝의 맛이 담겨져 있을 있어요.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좋은 길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안병식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트레일러닝 마라톤에 매력을 느낀 뒤 세계대회에 참여, 2006년 중국 고비사막대회(250㎞)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등 다수의 우승경험이 있다. 제주대 체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고향인 표선면 가시리에서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를 비롯 경기도 DMZ 트레일 러닝 등 국내 몇 안되는 레이스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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