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통사민(三通事民)
삼통사민(三通事民)
  • 제주일보
  • 승인 2017.09.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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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첫째 통(通) 이야기

“선생님, 통세는 어떤 말입니까?”

고등학교 영어수업시간, 완곡어법(Euphemism)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학생에게서 받은 질문이다.

‘뒷간’은 집 울타리 안에서 ‘일 보는 곳’을 완곡하게 암시하는 어휘이다. 즉, 듣는 이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은근히 에둘러 하는 말이다. 그 뒷간이 유식한 척 으스대는 한자어 ‘변소(便所)’에게 밀리더니, 언젠가 ‘화장실’로 바뀌었다. 이 조차 냄새가 나는지 ‘레스트 룸’으로 바뀌어 간다.

통세(通洗)는 제주도, 전라도에서 변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막힌 곳이 없이(通) 몸과 맘 모든 것을 잘 씻어내는(洗) 곳’이라고 풀이하면 어떨까. 빨래를 하든지 고양이세수를 하든지, 물(氵)이 먼저(先) 나와야 씻는다(洗).

이조 세종 때, 승정원 승지(承旨)들끼리 주고받은 이야기.

“밤이 어둡고 달도 깜깜해(夜暗月墨) 어른이나 아이나(大小列坐) 개천에 똥오줌을 누고(開川放糞尿), 나는 듯 얼른 집으로 가서 문 닫고 자물쇠 내리고(如飛閉戶下錀), 드르렁드르렁 코골며 자면(熟睡齁齁), 어찌 이 모든 사람을 묶어 형부(刑部)로 보낼 것인가?”

이 말을 듣던 다른 승지의 대답.

“집주인 영감이 한 통(家翁一桶), 할멈 한 통, 아들, 며느리, 첩 각 한 통, 종과 계집종 부부 한 통…, 다 모으면, 성 밖으로 지고 갈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擔負出城者何人耶)? 내가 지면(吾亦擔), 그대도 때때로 지겠는가(則子亦有時擔矣).”

얼마 전 제주시 하수종말처리장, 똥이 넘쳐났다(過負荷). 승지(承旨)가 지면, 아니 질 수 있는가 지사(知事)가, 똥지게를. 치수(治水)가 으뜸(一通)이다.

▲둘째 통(通) 이야기

“자동차(Car)나라(Nation)의 국화(國花)는 카네이션(Carnation)이다.”

미국의 국화(National Flower)는 카네이션이다. 미국은 자동차나라이다. 카네이션을 두 어휘로 띄어, 카(Car)·네이션(Nation)이라고 할 만큼 자동차가 많다.

차를 갖고 있지 않으면 불편 너머 두 발이 묶인 것처럼 느낀다. 버스는 대부분 시영(Municipal)인데, 운행간격이 너무 길다. 필자의 이 농담에 미국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었다. 사실인 걸 어쩌랴. 그런데, 우리나라가 닮아가려 한다. 걱정스럽다.

영국의 철도는 왕복표가 편도 보다 싸다. 복편 표를 쓰려는 사람에게 도착지에서 그냥 넘겨준다. 대중교통이 큰 핏줄이다.

버스전용도로를 제주도는 공사하고 있다. 20년 만에 가장 덥다는 여름, 도로들이 헐떡댄다. 아무리 막혀도 모두들 꾹! 참는 얼굴들이다. 하늘·땅·바닷길, 시원히 트일 것이다.

▲셋째 통(通) 이야기

“모든 성인(聖人)의 통공(通功)을 믿으며….”

천주교 사도신경의 한 구절이다. 성인의 영혼과의 소통(疏通), 기도로써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는다는 말이다. 기제(忌祭)의 강신(降神)분향(焚香)도 돌아가신 조상님의 영혼과 소통하려는 시작기도 아닐 텐가. ‘기도하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시오.’ 법정(法頂)스님의 말씀이다.

저 세상 영혼과도 소통한다.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무엇이 어려우랴. 아무리 미워도 입을 열게 하고, 아무리 멀어도 귀에 들리게(通信)하라. 소통은 일방통행(One Way)이 아니라, 들어줌(Listening)에서 비롯된다.

 

갈 길(甬) 굽어 덧나면(疒)

제 아픔(痛)에 눕게 되고,

길(甬) 마음 곧게 트이면

쉬며가도(辶) 곧 닿는다(通).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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