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유산효과(遺産效果, legacy effect)
당뇨병–유산효과(遺産效果, legacy effect)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17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영진 의학박사·가정의학과 전문의

[제주일보] 당뇨병은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거나(제1형 당뇨병), 또는 양은 충분하지만 어떤 이유로 조직에서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한다(제2형 당뇨병).

이와 같이 발병 원인이 다르므로 치료할 때 접근하는 방향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제1형 당뇨병에서는 부족한 인슐린을 보충해 주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2형에서는 인슐린 작용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번 칼럼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슐린이 작용하지 않으면 포도당이 혈액에서 세포 안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쌓이게 된다. 따라서 혈액에서 포도당의 농도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은 발병원인과는 상관없이 모든 당뇨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높은 혈당은 복잡한 기전을 통하여 세포에 손상을 입힌다. 예를 들면 눈의 망막, 신장, 신경 등에 분포하는 미세한 혈관들은 이런 위해(危害)에 특히 취약한데, 고혈당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막히거나 터져서 결국에 이들 장기의 기능까지 망가진다(미세혈관 합병증).

따라서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는 ‘높은 혈당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통해 정상에 가깝도록 혈당을 엄격하게 유지한 당뇨병 환자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환자에 비하여 합병증 발생률과 사망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더불어 발견된 놀라운 사실은 연구 기간 중에 혈당을 엄격하게 유지했던 환자와 그렇지 않았던 환자 사이에 벌어졌던 합병증 발생률의 차이가 연구가 끝난 후 수 십 년이 지나서도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가 끝나고 나서는 모든 환자들의 혈당 조절 정도가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였다.

다시 말해, 초기에 혈당을 잘 관리해둔 덕을 두고두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유산효과(遺産效果, Legacy effect)’라고 부른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서 ‘금수저’ 논쟁이 일고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사회에서의 성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씁쓸한 운명론이다. 이와 유사한 주장이 당뇨병 치료에서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당뇨병에서 ‘유산’은 부모한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내가 이루어 나의 미래에 물려주는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