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위기를 공감한 지식인들의 아픈 기억
나라의 위기를 공감한 지식인들의 아픈 기억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14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럭헌책방과 해광집(海狂集)
① 해광집(海狂集) 상권 서문 부분. ②, ③ 해광집 하권 목차 부분과 희암 양재경의 장서인 부분. ④해광집 하권 전(傳) 제주 관련 부분(入濟州求駿馬以授之·제주에 직접 와서 준마를 구해 의병장 김덕령에게 줌).

[제주일보] 책을 모으는 재미로 헌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인 것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시절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까닭에 맘에 드는 책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곤 했다.

그 때 알게 된 재미있는 헌 책방이 한 곳 있다. 헌 책이 나오는 곳이 있으면 전국 방방곡곡 직접 찾아가서 트럭에 하나 가득 싣고 와서, 한 벼룩시장에서 한 권에 얼마씩 파는 책방이었다. 트럭에 실려 있는 책은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여서, 동시에 같은 책을 집은 손님들끼리 벌이는 작은 실랑이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름하여 ‘트럭헌책방’….

한동안 그 동네를 떠나셨던 그 분이 상징과도 같은 그 트럭 대신 컨테이너와 함께 다시 나타나셨다. 바뀐 것은 책방의 외관뿐만이 아니다. 예전처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책보다는 고가의 귀한 책이나 자료, 예술품 등을 주로 취급하는 책방으로의 변신이었다. 요즘도 서울 출장을 가면 틈나는 대로 거길 찾아가곤 하는데, 그 때마다 보여 주시는 책들이 흥미롭다.

얼마 전 그 책방에서 입수한 책을 한 권 소개하자면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의병인 해광(海狂) 송제민(宋濟民 1549~1602)의 시문집 ‘해광집(海狂集)’이다. 송제민의 5대손인 송익중(宋益中) 등이 2권 2책으로 편집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서문은 김종수(金鍾秀)가 1783년에 쓴 친필을 그대로 판각한 것으로, 다른 본문에 해당하는 글들과 함께 같은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며, 발문은 이의철(李宜哲)이 1776년에, 행장은 기정익(奇挻翼)이 1687년에 쓴 것이다. ‘해광선생증직사실(海狂先生贈職事實)’ 등은 모두 1788년(정조 12)에 편찬된 것이고, 목록에는 없던 발문·행장과 함께 각(刻)한 솜씨가 다른 본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추가로 판각된 것으로 보인다.

상권에는 ‘소모호남의병문(召募湖南義兵文)’와 ‘만언소(萬言疏)’ 등 해광이 직접 지은 문장이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송시열이 쓴 묘표(‘宋子大全’ 海狂處士宋公墓表)나 박세채가 지은 전(‘南溪集’ 處士海狂宋公傳) 등 해광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수록한 것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활동과 지식인들의 시대 인식 등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권에 찍혀 있는 장서인(藏書印)을 통해 이 책의 전 소장자가 희암(希菴) 양재경(梁在慶 1859~1918)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재경은 화순 출신의 학자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다. 그는 구한말 송사 기우만,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등 내노라 하는 절의의 인물들과 교유했던 인물이다.

그 옛날 임진왜란을 겪으며 의병활동을 했었던 해광의 문집을 구한말 항일활동을 했던 희암이 아끼던 책이었다는 사실은 슬프다. 30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왜적으로 인한 나라의 위기를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똑 같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아프다. 다시 1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을 사는 우리는 당대의 그들이 처했던 현실에 비추어 반성해야 할 점은 없는 지….

다음 출장 때도 그 책방을 찾을 것이다. 우연히 만나게 될 또 다른 사연 많은 책들을 위해….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