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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엔 그리운 사람을 만나자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9.10

[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초가을 서귀포 바다는 지중해 물빛이다.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는 바다위로 파란 물감을 들인 듯한 하늘도 그렇다. 짙은 군청색과 맑은 푸른 색을 섞은 아청빛 색감. 거기엔 바다가 따로 없고 하늘이 다른 데 없다.

지난 토요일 오후. 서귀포시 상예동 수정사에서 열리는 나누우리 봉사단과 함께하는 ‘희망나눔 산사음악회’에 가는 길에 마주친 바다 풍경은 상큼했다. 수정사 뒷산 넘어 남쪽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해안선은 부드럽게 휘어지며 낭창거릴 것이다. 파란 하늘에서 유리알 같은 햇살이 쨍 떨어지고 수면을 타고 흐르는 해변의 물소리는 또 얼마나 정겨울지.

초가을 제주 풍경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추일서정(秋日抒情)의 우수도 고독을 넘어 멋스럽다. 조금 있으면 한라산도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되리라.

▲이런 초가을엔 산 바다에서 얼마나 걷기에 좋은가. 유럽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특권인 양 걷기를 예찬했다. 칸트나 루소 괴테는 물론 윌리엄 워즈워스나 키에르케고르 등 이름깨나 날린 작가와 사상가들은 모두 걷고 산책하는 것을 현란한 수사(修辭)로 찬양했다.

니체는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했고, 다비드 르 브르통도 걷기를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의 초대”라고 표현했다. ‘간소하게 살라’는 주창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상가 있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라고. 그의 ‘걷기 예찬’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걷기에 필요한 여가와 자유와 독립을 돈으로 살 수 없다. 걷는 자가 되려면 신의 은총이 필요하고 하늘의 섭리가 필요하다. 걷는 자가 되려면 걷는 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풍자가들은 이런 걷기 예찬에 대해 “마음만은 귀족이고 고귀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걷기가 물질이 아닌 마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어떤 어른이 말했다. “시원한 것 좋아하지 말아라. 신선한 가을 뒤엔 추운 겨울이 온다.”

하지만 이 좋은 가을에 제주섬 곳곳을 걸어보리라. 걸어봤던 곳도 또 걸어보는 것 또한 새로운 맛을 느낄 터이니.

추석이 지나면 초록도 지쳐서 소슬한 바람결에 빨강 파랑 낙엽으로 흩어져 날릴 것이다. 가을길이 주는 색감의 변화는 여름철 뜨거웠던 머리를 식혀주니까. 옷깃을 스치는 바람은 고뇌와 분노, 질투 등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가라앉힌다.

여름이나 겨울과는 달리 가을은 사색과 더불어 걷기의 계절이다. 우리 제주 올레길도 좋고 중산간 어느 마을길도 좋고, 산사를 찾아가는 길도 좋다. 걷다 보면 머리 속이 맑아지고 텅 빈 기분이 든다.

밤에 걷는 것 또한 매력이다. 특히 제주해안도로 길은 달과 별, 그리고 바다에 뜬 갈치잡이, 한치잡이 배에서 비치는 불빛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것이 가을의 행복이다.

▲이 가을에 제대로 한번 걷기조차 못한다면 소로의 말처럼 정말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이 가을엔 그리운 사람을 만나자.

오래된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동차 정비사 카터는 헤어진 딸과 화해를 못하는 사업가 에드워드에게 더이상 망설이지 말라며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군.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네 인생이 남에게 기쁨을 줬는가라네.”

죽음에 이르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가치가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 가끔은 왜 사는지, 인생의 기쁨은 무엇인지, 남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수정사 산사(山寺)음악회에 출연한 진성스님(마이산 탑사주지)이 부는 색소폰은 육성적인 울림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 무심하게 버려둔 건 없었는지’ 돌아보라고 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높고 푸르다. 아 가을. 아침에 부는 바람의 냄새와 색깔도 완연히 달라졌다. 내일은 어디로든 걸어봐야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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