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과 후손이 정담 나누는 날 ‘벌초’
조상과 후손이 정담 나누는 날 ‘벌초’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7.09.08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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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고향과 가족의 의미 되새겨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올해 추석(10월 4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요즘 제주의 중산간 들녘에는 벌초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후손들이 선산에 모여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벌초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이다.

벌초는 조상 묘역에 자란 잡초들을 베어내며 조상을 기리는 의미가 있지만 흩어져 살던 형제·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일하며 정을 다지는 계기도 된다.

제주 공동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풍습인 벌초도 도시화와 핵가족화 앞에서 차츰 변하고 있다.

▲제주의 독특한 벌초문화=제주에서는 벌초를 소분(掃墳)이라고도 하는데 크게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된다.

차례와 제사를 함께 지내는 8촌 이내의 친척들이 모여 고조부 묘까지 벌초하는 ‘가지 벌초’와 묘제나 시제를 하는 윗대조의 묘소에 문중 친척들이 모여 윗대 조상 묘를 벌초하는 ‘모둠 벌초’가 있다. 모둠 벌초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조상에 대한 벌초로서, 가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한데 모여서 한다는 의미에서 ‘모둠’이라는 말을 쓰는데 대개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이뤄진다.

모둠벌초와 가지벌초 순서는 특별히 정해진 게 없고 집안마다 다르다. 

‘식게 안 한건 몰라도, 소분 안 한건 놈이 안다’(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를 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제주에서는 벌초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 때문에 아직도 서울 등 다른 지방에서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서도 고향을 찾을 정도로 제주의 벌초문화는 유별나다.

추석날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용납하지만 벌초에 빠질 경우 친척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한다

제주의 벌초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으로는 ‘벌초방학’이 있다. 

학교마다 음력 8월1일을 임시 휴교일로 정해 학생들이 조상을 모시는 벌초에 참여하도록 했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내 모든 학교에서 시행됐으나 2010년 이후에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달라지는 벌초 풍속도=벌초문화가 유별난 제주에서도 최근 매장보다 화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납골당이나 자연장지를 이용하거나 봉분을 쌓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족묘를 정리해 자녀들에게 벌초에 대한 부담을 넘기지 않으려는 부모들도 나타나고 있다.

제주의 화장률은 2011년 54.8%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매장률을 앞선 이후 지난해는 65.3%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연장지인 제주시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이용도 증가세를 보여 2012년 455구를 시작으로 지난해 1480구, 올해 상반기 1274구 등 총 6915구가 안장됐다. 

제주의 벌초문화도 도시화와 핵가족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가족 변화, 화장문화 확산 등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벌초문화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문화가 벌초 대행서비스다. 도내에서는 2008년 9개 지역농협에서 시작한 게 현재 13개 농협으로 확대됐다. 또 산림조합에서도 벌초 대행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는 묘소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 등을 이용해 확인, 벌초를 한 뒤 깨끗하게 정리된 묘소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고향과 가족의 의미 되새기기=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죽음을 앞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자신의 근본(根本),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세태 변화에 따라 제주의 벌초 풍속도가 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벌초의 의미가 퇴색한 것은 아니다. 벌초를 통해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한 제주의 벌초문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예전에 비해 형식상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벌초라는 매개를 통해 고향에서 조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 의미만은 영원할 것이다.

벌초철 안전사고 주의

▲예초기 안전수칙 지켜야=도내에서 발생하는 예초기 사고의 대부분은 벌초철에 발생한다.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 시 장화와 장갑, 보호안경 등 안전장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장비 사용 중에는 기계 회전부에 신체가 접촉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 반경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벌·뱀 있는지 확인하고 피해야=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벌초철에 58명이 벌에 쏘이는 사고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벌집이나 뱀 등이 있는지 사전에 확인하고 만약 발견했다면 건드리지 말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강한 냄새를 유발하는 향수, 화장품, 헤어스프레이는 벌을 자극할 수 있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독버섯 유혹에 속지마세요=벌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 버섯들의 대부분은 독버섯이다.

독버섯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색깔이 화려하고 원색인 버섯, 세로로 잘 찢어지지 않는 버섯, 곤충이나 벌레가 먹지 않은 버섯, 조직의 상처에서 유액이 나오는 버섯 등을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야생버섯을 먹은 후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먹은 음식물을 토해내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진드기감염병 주의=벌초철을 앞두고 진드기로 인한 중증열성 혈소판감소증후군(STFS) 감염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도내에서 발생한 SFTS 환자는 16명으로 이 가운데 3명이 숨졌는데 벌초 등 야외활동이 많아지면서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긴팔, 긴옷, 등산화를 반드시 착용하는 등 피부노출을 최소화하고, 귀가 후에도 반드시 옷을 털고 몸을 씻는 것이 중요하다.

야외활동 이후 두통, 발열, 오한, 구토, 근육통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음주운전 절대금물=벌초철 중산간지역을 방문하는 차량이 증가하면서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교통혼잡이 발생한다. 또 음복 등을 이유로 술을 마신 뒤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경찰은 이 기간 교통 기동순찰 등을 강화해 음주운전, 정원초과 차량, 화물차 적재함 탑승행위 등을 단속한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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