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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劇), 몸짓으로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 녹여내다‘금희좌’ 김진문, 1930년대 제주연극계 견인…1975년 제주도연극협회 중앙 등록 ‘개화기’
고현영 기자 | 승인 2017.09.05
1970년대 폭발적 호응을 얻은 마당극 ‘놀부뎐’

‘한반도의 맨 끝에 버려진 아이처럼 홀로 있는 탐라라는 아름다운 고장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이곳은 문화의 변방이며, 행정적 벽지이기 이전에 틀림없이 민족의 얼과 맥박이 살아 뛰는 한국의 국토이다. 우리 고장에는 조상의 슬기로운 삶의 자취가 지금처럼 덧없이 빠른 세월 속에서도 연못의 파문과도 같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수눌음’의 문화선언 중)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경제·문화 등 상당수 분야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육지와 떨어져 있었고 교통수단의 발달이 미비했던 터라 제주도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 영역은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은 도민들의 ‘문화 갈증’을 더욱 증폭시켰고, 이는 더 신선하고 차별화된 형태의 문화 형성에 반석이 됐다.

그 중심이 연극이다.

제주 연극이 태동한 1930년대, 제주 출신 김진문은 극단 ‘금희좌(金姬座)’의 일원으로 무대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제주서 중앙극단의 공연을 처음 선보인 장본인이자, 태동기 제주도 연극계를 이끈 개척자였다. 제주에서 서구의 근대극은 그렇게 서서히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1940년대는 학생극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 중에서도 제주여자중학교의 활동이 빛을 발했다. 제주여중은 박애봉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춘하추동’을 공연했는데, 성인극에 뒤지지 않는 연기력과 이야기 전개로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제주 학생연극의 시초였다.

1951년 최초의 제주 Y회관 정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회원들 모습. <제주YMCA 제공>

1950년대는 6·25전쟁으로 인해 제주도 문화예술계도 고비를 맞지만 이는 오히려 ‘문화 갈증’을 해소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 중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제주도로 몰려들며 그들의 활동무대가 ‘제주’가 됐다. 제주도의 문화예술이 직접적인 자극과 영향으로 급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당시 연극의 상당수는 제주극장에서 공연됐다.

1960년대는 정치적·사회적 격동기로서 연극활동도 침체기다. 1962년 4월 29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제주도지부가 결성되면서 제주 연극인들도 제주도연극협회를 조직했지만 중앙에 등록하지는 못한 채 도내 동호인 모임에 그쳤다.

하지만 1970년대 바야흐로 개화기를 맞은 제주연극은 1975년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1975년 가람극회 회원들이 창립 공연 ‘버드나무 선 동네풍경’을 마치고 칼호텔 카파룸에서 찍은 기념사진

1975년 7월 10일 제주도연극협회가 그동안 숙원이었던 ‘한국연극협회’에 정식 등록되며 중앙과의 연결고리를 잇기 시작했다.

이에 덧붙여 그동안 초대권에 의한 무료입장 관행이 주를 이뤘던 공연문화가 유료화 작업을 거치게 된다. 공식적으로 관객들의 쌈짓돈을 주머니에서 꺼내게 만든 첫 연극은 가람극회의 ‘버드나무 선 동네’였다. 1975년 5월 제주YMCA가 창립한 ‘가람극회’는 6월 21일 제주칼호텔 카파룸에서 창립공연을 하며 ‘공연 유료화’의 물꼬를 텄다.

1951년 창립된 YMCA(당시 제주시 중앙로 나사로병원 위치)는 도내 학생들의 연극공연을 비롯해 음악회, 마당극, 글짓기, 문학의 밤 등의 다양한 행사를 열며 문예부흥의 시대를 열었다.

1978년 극단 이어도는 극협제주도지부 산하 극단으로 처음 등록했다. 이어도는 창단 기념작품으로 ‘돼지들의 산책’을 공연하면서 출범했다.

1976년 가람극회 창립 1주년 기념 공연 ‘불청객·유실물’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마당극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문화운동의 비판적 수용이면서 일종의 반란이었다. 내 고장의 삶의 문제를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 함께 고민하는 진정한 지방문화의 출발을 알리는 청신호였기 때문이다.

이 중심에는 ‘수눌음’이 있었다. 관덕정 우체국 맞은편 동인빌딩에서 1980년 8월 창단한 수눌음은 소극장 ‘카페동인’을 마련 전문적 공연을 펼쳤다. 수눌음은 그해제주도의 토지 문제를 다룬 ‘땅풀이’·‘태땅’ 등을 공연했다.

TV나 영화는 배우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수정하고 또 수정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연극은 순간 순간 관객들과의 교감이다. 배우가 숨을 쉬면 관객도 숨을 쉬고, 무대에서 주인공이 숨을 멈추면 관객도 따라 호흡을 잠깐 멈춘다. 연극의 매력이다.

당시 제주인들의 애환을 무대 위에 투영했던 그들의 몸짓, 소극장에서 꿈틀거린 제주의 문화지도를 천천히 다시 그리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고현영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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