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헐 바엔 설러붑서!
경 헐 바엔 설러붑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0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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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종. 문학박사 / 서울제주도민회 신문 편집위원장

[제주일보] 자라면서 들었던 제주어 중에 ‘설러불라’ 하는 말이 있다. 필자가 무슨 일을 계획하여 실행하다가 미적지근하게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보일 때에 어머니로부터 따끔하게 들었던 말이다. 나태해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니다 싶을 때에 툭 던져지는 말이다.

‘설러불다’는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 두어버리거나 벌여놓은 것을 치워버린다’는 뜻을 가진 제주어이다. 조금은 ‘부에 내듯이’ 못마땅할 때 ‘설러불라’ 하고 나오는 말이다.

이번 여름은 제주도만 하더라도 김녕 지역의 기온이 38.6도까지 오르는 등 유난히 무더워 불쾌지수가 높았던 여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기에다 이번 여름에 우리들이 보고 들었던 정치권의 모습이 우리의 불쾌지수를 더욱 높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마련한 추경안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국민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당 의원의 1/5 이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하는 바람에 표결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회의장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며 눈물을 보였던 여당 원내대표의 남 탓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발언 당시에 한 야당의 충북 도의원이었던 모 의원은 최악의 물난리 와중에 외유성 연수를 떠났다가 언론과 국민들의 질타가 있자 국민들을 ‘레밍(들쥐) 같다’고 하여 공분을 사는 일도 있었다. 자신을 뽑아준 국민, 유권자를 향해 ‘레밍’이라 했으니 그 도의원을 뽑아 준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싶다.

또 한 야당의 원내부대표는 학교 식당의 조리종사원들을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거나, ‘알바비를 떼여도 고발해선 안 된다’는 말을 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또 다른 야당의 전 충남도당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위안부와 관련하여 ‘인생의 최대 기쁨은 적을 정복하고 그 적의 부인이나 딸의 입술을 빠는 데 있다는 칭기즈칸의 명언에 따라 의례히 전쟁에선 부녀들의 대량 성폭행이 이뤄져 왔다’며 전쟁 중의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국적을 의심케 하는 글을 올렸다.

하나같이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정치권의 모습이었다. 특히 자질을 의심케 하는 막말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다는 점과, 자신이 내뱉는 이야기 속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항상 빠져있는, 소위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요새 힘없는 ‘을’에 대한 ‘갑’의 횡포, 이른바 ‘갑질’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을 향해 ‘레밍’이라거나 ‘밥하는 아줌마’라 손가락질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갑질은 온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서두에 언급했던 ‘설러불라’를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던져주고 싶다. 선거 기간에는 90도로 인사하며 표를 구걸하다가 선출되고 나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지역구를 잘 돌아보지 않으면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인 일반 공무원에게 갑질이나 하는 정치인들은 배격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궨당(眷堂)’ 아니냐며 없던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데 과감히 떨쳐버릴 일이다. 그들을 위한 ‘궨당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어려운 이웃에게 ‘이웃사촌’이 되는 ‘이웃궨당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인들은 온전히 내 힘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동안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갑질 대상이 아니라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이기에 갑질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행위일 뿐이다.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우리 손으로 뽑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 주권재민(主權在民)은 선거 때만 있다고 생각하고 평소에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를 허수아비로 생각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따끔하고 과감하게 본분을 일깨워주는 유권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들에게 ‘경 헐(ㅎ+아래아+ㄹ) 바엔 설러붑서!’ 하는 유권자로서의 따끔한 일갈이 있어야 한다.

이제 처서가 지나고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마침 정기국회도 개원되었으니 고성으로 막말이 오가는 모습을 지양하고, 본연의 국정 감시 기능과 함께 국민들을 사노롱하게 해 주는 통 큰 정치, 통 큰 협치의 모습이 나오길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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