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상실의 시대에 가지는 기대
장소 상실의 시대에 가지는 기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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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영. 문화기획자 / 관광학 박사

[제주일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공간은 다양하다.

하늘, 바다, 산 등 경관의 공간부터 도시, 국가가 영토로 규정한 공간, 천체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러한 공간들은 대부분 장소감이나 장소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어떻게 공간을 느끼고 알고 또 설명할 때 참조되는 것이 특정한 장소들인데 내용과 의미를 지닌 공간은 한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문화의 의미인 동시에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장소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 속성이며 안정과 정체성의 원천

장소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생활세계 지리학의 한 현상으로 탐구하는 지리학자들은 장소야말로 진정 인간 실존의 근본적 속성이며 개인 또는 집단에게 안정과 정체성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의미있는 장소를 경험하고 창조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들이 부족한 곳들에서는 장소의 독특하고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이 약화되는 현상, 즉 ‘장소상실’을 경험하고 있다며 우려하기도 한다.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산지천은 병문천(屛門川), 한천(漢川)과 더불어 제주시의 3대 하천으로 여겨져 왔다.

조선시대 제주읍성의 젖줄이었던 이곳은 제주시민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장소로 상당한 변화를 경험하여왔다.

산지천(山地川)의 하류(일도2동 동문교에서 건입동 용진교) 구간은 1966년 10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약 30여 년간 복개되어 주상 복합지구로 이용되다가 그 후 정비를 통해 2002년 6월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으나 다시 변신을 시도, 지난 3월 탐라문화광장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영춘 빵집 근처, 빨래터, 동네 친구들과 멱감고 낚시하던 곳, 신혼살림을 시작한 복개천 옥탑방 등으로 기억되는 산지천 일대에는 탐라광장, 북수구 광장, 산짓물 공원, 산포 광장 등 다소 낯선 이름의 장소들이 생겨났다.

그나마 철거 위기에서 가까스로 ‘재생’된 몇 몇 건물들은 현재 불려지는 이름으로 옛 장소의 의미와 내용을 희미하게나마 가늠하게 할 뿐이다.

게다가 산지천 주변은 주취인 및 노숙인 관련 주폭 문제로 인한 인근 상인과 주민들 피해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삶에 의미있는 맥락이 되는 장소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 필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장소상실의 문제는 유독 산지천 탐라문화광장만의 것은 아니다.

도시 경관이 획일화되면서 우리 삶에 의미있는 맥락이 되는 장소를 창조하고 보호하는 노력이 결여되고 특히 디즈니화, 박물관화로 대변되는 관광으로 인한 타자 지향장소들의 남발 현상들은 장소상실의 시대에 우리 삶에 의미있는 맥락이 되는 장소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태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에서 시작될 수 있겠다.

도시는 어떤 측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간 관계 맺기가 반복되고 그 관계들이 시간적으로 축적되어 형성되는 관계론적 공간이라는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할 수 있겠다.

산지천 주거민이 가지는 장소감의 변화,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일원의 장소를 향유하는 내부인(주거민)과 외부인(관광객)의 시선에 대한 분석도 산지천 장소 정체성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산지천이라는 장소에 깊이 뿌리내린 삶을 채록하고 공유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의 구현은 장소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여 장소성을 풍부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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