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불문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일갈(一喝)"
"남녀 불문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일갈(一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1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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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가사집(閨房歌辭集)
규방가사집 '일편단심(의성김씨 삼신댁·1962) 사친가'의 맨 앞부분(1)과 뒷부분(2)

[제주일보]옛 것을 수집해서 판매하는 골동점 등을 다니다 보면, 목판으로 인쇄된 고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 책들을 들추어 보다 보면 사이사이에 한문이나 한글로 필사한 두루마리나 지승(紙繩)으로 간단히 제본한 종이 뭉치를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 한문으로 필사된 것들이지만, 개중에 종종 한글로만 적힌 뭉치들이 보인다. 한 번 읽어 보면 우리가 쓰는 지금의 한글과 달라 쉽게 읽히지 않는다. 혹시 책이나 글의 제목이 ‘○○가’라고 붙어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시라. 만일 그렇다면 눈 앞의 종이 뭉치는 ‘규방가사집(閨房歌辭集)’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가사(歌辭)는 고려 말에 발생해서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문학양식으로 자리 잡은 우리 문학의 한 갈래이다. 4·4조의 기준 율격만 있고, 행(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율문(律文)형식인 가사가 규방(閨房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의 여성들에 의해 창작된 것이 ‘규방가사’이다. 학계에서는 영조(英祖)대 초~중엽에 성립되어 주로 영남지방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소멸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

최근 입수된 ‘의성김씨 삼신댁용’ 규방가사집 ‘일편단심’을 보면, ‘임인(壬寅)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글씨체 등으로 보아 1902년과 1962년으로 볼 수 있는 데, 맨 뒷장에 써 놓은 주소가 ‘김해군 이북면’인 것을 보면, 1962년에 필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해군에 이북면이 생긴 것은 1914년이고 1987년에 한림면으로 개칭되었기 때문이다.

이 가사집에는 등 모두 세 편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맨 앞에 수록된 ‘사친가’는 부모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다음 생애에는 남자로 태어나서 부모님께 효도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다. ‘가소롭다 가소롭다...’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권영철 교수가 경북 영천지방에서 수집한 ‘사친가’와 동일하지만 이어지는 중·후반부의 내용은 상당 부분이 다르다.

두 번째로 수록된 ‘한탄가’는 자신의 신세를 탄식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이 ‘한탄가’도 도입부는 불교가사인 ‘회심곡’으로 출발해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데, 말미에는 고려 말의 유학자 우탁(禹倬) 선생이 지은 탄로가(嘆老歌)도 조금 변형돼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가사는 제목을 ‘해심곡’이라고 했으나 내용은 불교가사인 ‘별회심곡(別回心曲)’을 수록했다. 맨 앞의 한 장이 탈락되어 ‘다 사라도 병든 날과...’부터 남아있다. 이 가사도 원작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필사자가 개작(改作)한 곳이 보인다.

봉건적인 폐습에 억눌려 살던 조선 후기 부녀자들의 한(恨)과 남녀 간의 애정, 시집살이의 괴로움, 현모양처의 도리 등을 노래한 것이 규방가사이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여성문학으로서의 문학적 가치 이외에도 민속이나 역사, 사회,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중요한 자료이다. 어느 골동점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눈길 한 번 더 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의성김씨 삼신댁이 남긴 ‘사친가“의 맨 마지막 구절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요즘을 사는 우리네 모두에게 보내는 “일갈(一喝)”은 아닐는지...

“무심한 여자들아 부모 생각 음는 이는 어찌 사람이라 하오릿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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