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선거제도를 바란다
공정한 선거제도를 바란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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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대의 기구는 언제나 시민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지도가 산과 계곡, 강과 호수, 숲과 평야, 도시와 읍을 표시하듯 의회 내의 의견·열망·소원은 원본에 정확히 비례해서 제시돼야 한다.”-1789년 1월 30일 프로방스 의회에서 미라보 백작(HonoréMirabeau, 1749~1791)-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현대 국가는 사회계약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국가는 헌법이라는 시민들의 계약서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민들이 원하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고, 또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독립할 수 있다.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마음에 드는 헌법을 가진, 곧 마음에 드는 계약관계를 가진 국가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계약설이다.

이러한 사회계약설이라는 이념에 따라 만들어진 현대 국가는 언제나 깨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물론 국제관계라는 현실 때문에 이러한 사회계약설의 이상에 일정한 제약이 있다. 이민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고, 또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국제적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쨌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열린 나라는 꽤 많고, 스웨덴에서 노르웨이가 1905년 평화적으로 독립했던 것처럼 분리·독립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리·독립이나 개별적 이민을 현대 국가는 강제적으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분열하거나 붕괴되지 않고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발전된 현대 국가는 강력한 전근대적 왕국이 백성들에게서 이끌어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유대감과 충성심을 시민들 사이에 형성했다. 그것은 현대 국가가 분열의 가능성과 함께, 아니 오히려 그 분열의 가능성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통합의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가 다양한 시민들 사이의 유대와 통합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현대 국가의 종교·지연·불평등 등이 다양하고, 때로는 분열하려는 집단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며, 그 목소리가 정치제도에 반영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집단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제도에 반영할 수 없는 국가는 시민 사이의 유대와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으로 유지될 수조차 없다.

최근 국회의원·도의회 의장·제주도지사가 여론조사를 통해 제주도 선거구를 재조정하기로 합의했지만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마저 반대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을 수 있는 공정한 선거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지역주민들을 통합하는 기본적 전제다.

공정한 선거제도는 장기적으로 지방자치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제도적 토대인 것이다. 도의회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지도가 실제 지형을 반영해야 하듯이 도의회는 지역구 주민뿐만 아니라 여성·장애인·이주민·노인과 청년을 대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선거제도는 도의회가 지역구의 의견을 대표할 뿐 여성·장애인·이주민·노인과 청년 등 지역에 산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 역할을 하도록 비례대표제도가 만들어졌지만 현재 비례대표제도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2014년 제주에서 6.1%를 득표한 정당은 산술적으로는 적어도 2명의 도의원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새로운 정당이 국회와 도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새로운 정당의 진입을 막고 있는 의회는 부패와 무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의회의 구성과 도민들의 구성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면 선거제도의 방향이 보인다. 지역 정치가들은 여론을 핑계로 꼼수 부리지 말고 정도를 가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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