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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과 화해.상생
부남철 기자 | 승인 2017.08.10

[제주일보=부남철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24일 아르메니아 대통령궁 연설에서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오스만 투르크(현 터키) 통치자들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한 참극을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지칭했다.

교황은 터키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것을 알면서도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에 대해 터키 외무부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역사가들이 희생자 수를 부풀린 데다 우리도 충돌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며 “교황의 편견이 터키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황은 아르메니아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세기에 3번의 제노사이드가 있었다는 게 내 소신”이라며 자신의 연설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첫 번째는 오스만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두 번째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나머지 하나는 스탈린의 인민 대숙청이다. 이 모든 비극은 1, 2차 세계대전의 연속선 상에서 일어났다”며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들(터키)은 항의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항의 때문에 같은 사건에 다른 단어를 쓰면 낯설게 들릴 것이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던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틈을 이용해 오스만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봉기했다. 그러자 오스만은 봉기를 무력화하고, 남진하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가 합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들을 강제 징집해 집단 사살하거나 노역장으로 몰아넣었다. 사막으로 추방된 부녀자와 노약자는 대부분 기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아르메니아는 희생자 수가 150만 명, 터키는 50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인종) 대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는 인류 사회가 단죄하는 범죄 중의 범죄다. 가해자 입장에서도 어떤 잔악 행위에 제노사이드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건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독일이 아직도 유대인 대학살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44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고대 그리스어(genos)와 살인의 라틴어(cide)를 결합시켜 제노사이드란 단어를 만들었다. 렘킨은 제노사이드는 반드시 한 집단의 ‘즉각적인 파괴’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집단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는 다양한 행위를 지칭한다고 했다. 집단의 존재기반을 서서히 와해시키는 ‘부드러운 절멸’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비극에 고통을 겪고 있고 반목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이 반목을 넘어서는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특별자치도재향경우회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화해·상생을 위한 합동순례’를 실시했다. 두 단체는 4년째 이 순례를 실시하면서 ‘화해와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기자도 이들 순례단과 함께 경상북도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위령탑,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 기념관 내 구국경찰충혼비, 충남 논산시 벌곡면에 있는 대둔산 승전탑 참배 등의 일정을 같이했다.

순례단들은 자신의 이념과 소속 단체를 떠나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6·25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은 물론 군경은 모두 민족의 비극을 짊어진 사람들이었다”라며 “우리 순례단이 궁극적 목적은 화해와 상생인 만큼 순례를 매해 계속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제주도민들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나가고 있다.

교황은 아르메니아 방문 후 “강대국들은 이런 비극을 다른 각도에서 봤다. 1차 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아르메니아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2차 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문제는 어디 있는가? 얄타회담(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열린 승전 연합국 회담)에서 누구도 그것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연합군이 수용소에서 대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알면서도 군사 작전을 우선하느라 그 거대한 악을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 대화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 앞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들(강대국)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내년이면 제주4·3사건 제70주년을 맞는다. 제주도민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당시 국가권력과 강대국들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들은 왜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나?”라고. 이제 그들이 대답할 때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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