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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洪娘)의 푸른 넋현태용. 수필가·제주동서문학회장
제주일보 | 승인 2017.08.08

[제주일보] 지난달 8일 애월읍 유수암리 어느 한 기슭에 묻혀 있는 의녀 홍윤애(洪允愛)의 묘를 찾았다. 마침 홍윤애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홍윤애문학제 행사를 개최하고 있었다. 홍윤애 하면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더욱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작고해 계시지 않지만 향토사학가이자 제주문화원장으로 활동하셨던 홍순만 선생이 1990년 중반 즈음 수소문 끝에 그녀의 묘를 찾게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녀는 조선시대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단 하나뿐인 생명을 바친 제주의 여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일명 홍랑(洪娘)이라 불렀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임금을 시해하려는 음모에 연루돼 제주에 유배 온 죄인 조정철(趙貞喆)이었다. 어떻게 보면 보통 죄인이 아니라 대역 죄인을 그녀는 사랑했다. 그녀가 조정철을 만난 것은 1777년이었다. 그는 심부름을 하던 중 사랑에 빠졌고, 1781년 2월에 딸까지 낳게 됐다.

그 해 3월, 조정철의 반대파였던 김시구가 제주목사로 부임됐다. 김시구는 제주에 오자마자 유배인들에 대한 죄상을 심문하면서 홍윤애를 동헌(東軒)에 불러들였다. 죄인 조정철의 비행을 고하면 푸짐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홍윤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처참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죽고 말았다. 권력이 쳐놓은 덫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낸 것이다. 그 때가 1781년 윤 5월 15일이었다. 그녀의 장사는 그가 죽은 지 17일 후인 6월 2일에 거행됐다. 그녀가 죽던 날, 천지가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천둥 번개와 더불어 폭풍이 몰아쳤다고 기록들은 말해주고 있다. 김시구 목사의 잔인함에 하늘도 분노를 한 것이다. 다음 날부터는 석 달 가까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이는 홍랑의 한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를 죽게 한 김시구는 급기야 조정에까지 알려지면서 황인체 판관과 함께 파직됐고, 조정철은 재조사를 받은 후 정의현으로 이배됐다. 조정철은 조선의 당쟁과 유배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종조부와 부친, 그리고 자기까지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4명이 제주에 유배됐다. 또한 27세부터 55세까지 총 29년 동안의 최장기 유배생활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57세부터 제주목사 직을 비롯해 형조판서까지 81세 동안 승승장구한 관직생활을 했다.

홍윤애의 죽음으로 인하여 목숨을 건진 조정철은 29년의 오랜 유배생활을 끝내고 관직에 등용되자 1811년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를 자원해 부임하면서 곧바로 생명의 은인인 홍윤애의 묘를 찾았다. 조선시대를 총망라해서 목사의 신분인 사대부가 한 여인의 무덤에 찾아가 통곡을 하고 추모시를 써서 ‘의녀홍랑지묘(義女洪娘之墓)’란 비를 세웠다. 홍윤애 묘비명과 추모시는 우리 국문학사에서 ‘유배문학의 꽃’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제주의 여인 홍윤애, 그녀는 한 여인의 순애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주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정의로운 정신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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