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 돌아 해송길로…탁 트인 바다 너머 제주섬 '장관'
송악 돌아 해송길로…탁 트인 바다 너머 제주섬 '장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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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10코스(화순~모슬포올레)-사계포구~해송길(5.7㎞)
해변에서 바라본 송악산.

 # 사계포구에서

좀 쉬어 갈 양으로 사계포구 동쪽 방파제에 앉아 변해버린 산방산 앞 풍경을 바라본다.

산방연대와 하멜기념비는 이미 있던 것들이지만, 하멜상선 전시관이나 바이킹 외에도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식당들이 많이도 들어섰다. 과거 산방산을 배경삼아 찍던 초가집은 사라진 지 오래고, 전설을 안은 용머리는 이제 지질트레일 코스의 중심이 됐다.

산방산, 용머리, 월라봉 뒤로 아스라이 보이는 한라산, 썰물 때 드러나는 파래밭은 오늘 물때가 안 맞다. 그런데 그리 깊지 않은 설큼바당 한 켠에서 혼자 자맥질하는 해녀가 있다. 짧은 숨을 참으며 열심히 물 속을 들고 나는 것이 꼭 어릴 적 내 누이 같다. 더 깊이 들어가야 큰 것들이 많이 잡힐 텐데….

 

‘해녀들 봄 물질 끝나 가을 물질까지/ 밭일하러 나가면/ 바다와 태왁은 검은 잠수복 신세다// 마늘 까고 깨 두드리고/ 마늘 심고 녹두 장만하고/ 감자 싹이 돋아나면/ 잠수복에 서캐처럼 피어난/ 소금 홀씨 날아간다// 훨훨 날아가/ 해녀의 몸 친친 감아 물때를 일러주면/ 갯가로 하나, 둘 몸 풀러 나서는 상군의 호령 있어/ 바다는 다시 살아난다’

- 김병심 ‘사계리 바다는 아름답다’ 부분

 

화석 발견지 주변의 모래땅.

# 발자국 화석 발견지

해안길로 들어가 신발을 벗어들고 바닷물에 발을 적신다. 여름이라 시원하긴 한데 파도가 달려와 옷을 적시려든다. 이곳 모래는 화산재가 섞여 있어 다른 모래와는 달리 황토색이 우러난다. 조개들도 그런 빛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모래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곳에는 수많은 구멍과 자국들이 있어, ‘이것도 무슨 발자국이 아닌가’ 추측을 하며 걷는다.

사람 발자국 화석은 우리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당시 이 지역에 생존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취를 해석하고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유산이다. 이곳의 지층은 해안가에 쌓인 쇄설성 퇴적층으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 자료에 따르면 약 1만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구역은 500여 점의 사람 발자국 화석과 함께 우제류, 장비류, 육식동물, 조류의 다양한 발자국 화석, 새의 깃털, 연체동물, 절지동물 및 식물화석, 그리고 수없이 많은 무척추동물의 생흔화석이 산출됐다. 이처럼 다양한 화석물이 사람 발자국 화석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거의 알려진 바 없다 한다.

 

# 산이수동에서 형제섬을 보며

해안도로가 뚫려 마라도로 가는 뱃길이 열리고, 송악산이 각광을 받으면서 상모리 산이수동은 꽤 북적이는 동네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 포구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곳, 크고 작은 섬이 형제처럼 마주 서 있다. 길고 큰 섬이 본섬, 작은 섬은 옷섬이다. 그래서 이곳은 형제섬 사이로 뜨는 해를 찍는 이름난 사진 촬영지다.

관광객들은 탤런트 이영애가 나오는 ‘대장금 촬영지’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데, 그 뒤로 보이는 송악산 해안의 일제 진지동굴에서 촬영한 것 같다. 이 땅굴은 상륙해오는 미군 선박에 잠수정이나 보트 등을 이용해 폭탄을 싣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천연 해식동굴을 포함해 17개의 굴이 있다.

굴 속으로 들어가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바다는 물론 한라산 아래로 많은 오름과 해안이 평화롭기만 하다.

 

# 송악산을 돌아보며

송악산은 반도처럼 바다로 돌출해 있고 전망이 좋다보니 오래 전부터 이곳을 유원지로 개발하려고 애써왔는데, 지금도 중국자본이 들어와 개발을 추진 중에 있다.

대정읍 상모리 산2번지 일대에 자리한 표고 104m, 면적 58만5982㎡의 송악산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폭발한 복합형 화산체이다. 그래서 송악산은 주변의 산방산, 용머리, 단산 등과 함께 지질과 지형적 측면에서 제주도의 형성사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장소이며, 이중식 화산체여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비교적 늦게 화산활동을 해서 그런지 제2분화구와 능선은 아직도 불안정해 쉽게 훼손이 진행됨에 따라 2020년 7월까지 정상 등반이 중단됐고, 올레길도 주변을 돌아가도록 변경됐다. 배를 타고 돌아보면 동·서·남쪽 사면이 심하게 침식돼 있고, 특히 남쪽은 높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굳은 바위가 아니라 대부분 부서지기 쉬운 화산쇄설물로 이뤄져 있으므로 가까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

 

송악산 북동쪽 올레길.

# 오름을 돌아 해송길까지

동쪽으로 들어가면서 탁 트인 바다 너머로 보이는 제주섬의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한라산을 정점으로 남서쪽 능선 아래로 산방산까지 펼쳐진 오름의 곡선과 해안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형제섬 주변으로 몰려드는 피난 어선단의 모습은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남쪽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의 모습은 단숨에 헤엄쳐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보인다. 까만 염소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라산 화산 활동의 기적은 동쪽 끝에 성산, 서남쪽 끝에 송악산을 대칭으로 두고 아름다운 절경으로 후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양 끝에 돌출해 있다 보니, 지리적 요충지로 마지막 전쟁 준비에 광분했던 일제에 의해 진지를 구축하느라고 마구 파헤쳐지는 생채기를 남겼다. 송악산 서쪽 외륜에는 조선시대 대정현 소속 봉수대를 설치해 저별봉수(貯別熢燧)라 이름하고 북동쪽으로 호산봉수, 북서쪽으로 모슬봉수와 교신했던 봉수대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이 새로 개발하려는 외래자본의 건축 현장이 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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