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감정 표현 아홉 살 감성으로
마음 속 감정 표현 아홉 살 감성으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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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아홉 살 마음 사전

[제주일보]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을 굉장히 오래 페이지를 아껴가며 읽었었다. 시인이 고른 ‘마음’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고유한 통찰의 눈으로 바라보고 날카롭되 섬세한 결의 단어들로 재정의 내린 책이다. 이를테면 ‘허전하다’라는 표제어 아래 ‘무엇인가 있다가 없어진 상태. 혹은 있기를 바라는 그것이 부재하는 것. 그래서 허전함에는 무언가를 놓아버려 축 처진 팔이, 팔 끝에 잡았던 느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손이 달려있다.’ 라고 설명하는 식.

읽다보면 나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내 시선과 언어로 재정의한 사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스물스물 일곤 한다. 단어가 지닌 보편성을 살짝 지우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의미만 적힌.

과연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나만의 마음사전’을 채워놓으려면 우선 단어들의 사전적인 의미와 그 용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어린이 자료실에서 이런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박성우 시인이 쓰고 김효은 화가가 그린 ‘아홉 살 마음사전’이란 책이다.

이 책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 80개와 그 말의 뜻, 그런 감정이 드는 구체적인 상황들이 나란히 실려 있다. ‘불안해’라는 단어 옆에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라는 단어의 뜻이 설명되고 ‘엄마도 아빠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도둑이 들면 어떡하지?’ 라는 그런 감정이 드는 상황과 ‘발표회에서 피리를 불 때 계이름을 잘못 누를 것만 같은 마음’ 이라는 비슷한 상황을 함께 제시해주는 식이다.

어린이들이 ‘아, 이럴 때의 마음이 이런 단어로 표현되는구나.’라고 알게 해주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어렴풋이 어렸을 적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돌아와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편을 봤던 날. 이미 책으로 읽어서 주인공 네로가 교회당에서 파트라슈를 껴안고 얼어 죽는 결말은 알고 있었는데도 왜 그랬는지 꺼이꺼이 오열했었다.

엄마가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셔도 그때의 기분은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있었고, 어렸어도 그게 단순히 ‘슬퍼’라고 말할 수 없는걸 알았지만 그 감정의 덩어리에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 지 몰라 그저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의 내게 이런 사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엄마에게 ‘플란다스의 개’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아로아가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라고 붙잡아도 굳이 눈보라를 헤쳐 교회당으로 향하는 네로 때문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어. 네로가 죽고 나서야 걔가 지갑을 훔쳤다는 오해를 풀게 된 아로아의 아빠가 야속하고 미웠어.” 울먹거리면서도 이렇게 내 기분을 제대로 얘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이런 단어와 용례들을 마음속에 저장해두고 꺼내 쓰면서 다양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구분하고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마음에 닿는 것들을 접할 때,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말하기가 힘들어 ‘울었다’ 혹은 ‘울 것 같았다’라고 게으른 감상으로 정리해버릴 때의 무력감을 조금은 덜 느낄 수 있었을지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아직은 서투른 아홉 살들과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할 단어들을 찾다가 입을 닫아버리고 마는 어른들에게 고루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강희진 제주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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