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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의 정치학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8.03

[제주일보=신정익 기자]

▲며칠 전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봤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경선이 스토리 뼈대를 형성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해 대선후보의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줬던 정치적 치열함, 인간적 고뇌 등을 통해 ‘인간 노무현’을 회고하는 영화다.

당시 경선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노무현-이인제 2파전으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이인제 후보는 권양숙 여사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행각을 했다며 ‘색깔론’으로 노 후보를 몰아붙였다.

이 때 노 후보의 진면목이 나온다. “그러면 지금 와서 마누라를 버리기라도 하란 말입니까”하면서 일갈했다. 그걸로 끝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인 ‘색깔론’의 원색적 공격을 공명이 큰 한 마디로 정리하고 대세를 장악했다. 정치인의 말은 그런 것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하는 수단이라는 얘기가 된다. 결국 ‘말은 곧 그 사람이다’는 말과 통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자신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 사이에선 “정치보다 정치인들이 문제다”라는 냉소적인 반응들이 나온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한다는 정치인들이 저급한 헛말, 빈말이 도를 넘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들의 수준을 거침없이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먹고사는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좌절감과 정치에 대한 염증만 확대시키고 있다.

▲얼마 전 국민의당 한 여성의원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학교 급식노동자들을 ‘미친 X들’이라고 비하했다. 그러면서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다. 별 게 아니다.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냐”라고 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이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알바비를 떼여도 고발을 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이라는 반(反)공동체적 말을 해서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국민의 상식이나 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비난을 자초했다.

충북도의회 모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이상한,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lemming)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발언해 국민적 공분의 중심에 섰다.

청주를 비롯한 충북이 사상 최악의 수해를 봤는데도 유럽 연수에 나선 것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하는 민심을 향해 ‘집단 자살 나그네쥐’로 불리는 설치류‘레밍’에 비유했다.

지난해 7월 교육부의 고위직 공무원도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는 망언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 속에 파면됐다.

▲이른바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막말 속에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제1야당의 당대표는 막말정치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이의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저급한 표현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돼지발정제’ 논란을 비롯해 도지사 시절 야당 도의원에게 ‘쓰레기’라고까지 했다. 이 뿐이 아니다. ‘주사파 정권’, ‘바뀌벌레’ 등등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 다시 당대표가 된 그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로 당을 혁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자신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행태가 말이다.

막말이 이슈가 되는 것을 즐기면서 자신의 리더십쯤으로 여긴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흑인여성으로는 최초로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토니 모리슨은 “말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빼고 말을 한다면, 그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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