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열여덟
에이, 열여덟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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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일보] 음전한 그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민원인의 전화 너머로 들린 불쾌한 말 때문이다. 그 말은 “에이, 열 여덟!” 그이는 부르르 떨었다. 들고 있던 전화기를 꽈당 내리꽂았다.

그이의 얘기를 전해들은 사무실 직원들은 황당했다. 엿듣고 있던 통화내용이 거슬리고 못마땅해도 그런 뒷말을 하다니.

부적절한 말을 한 장본인은 지역문화예술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였다. “작품과 인품은 다르다”고 애써 위로했지만 그이는 난생 처음 당한 폭언에 치를 떨었다. 급기야 귀를 씻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 필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재단 ○○○입니다.”그 사람은 다짜고짜 책이 나오면 그 후속작업을 담당직원이 해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지원금 절차를 이해하지 못하고 발생한 사안이었다. 발간사업의 경우 책이 나오면 지원사업자가 2차 교부금을 신청하면 된다.

업무담당자가 바뀐 경위를 설명하고 교부 절차를 알려드렸다. 그는 막무가내였다. 전화기 너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급기야 전화받고 있는 필자의 이름을 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민원을 넣겠다고 말의 수위를 높였다.

그냥 멍하니 당하고만 있자니 약이 올라 허공에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민원인에게 만년 ‘을’인 필자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사과를 드렸다. 한참 설명을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한 민원인은 정중히 미안하다고 했다. 전화 한방으로 피멍이 든 필자는 그로기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소한 컴퓨터 작동까지 민원인들은 직원에게 묻는다. 시스템 버튼이 열리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부터 사소한 컴퓨터의 오작동까지 매일 전화통이 불이 난다. 컴퓨터 사양과 사용자의 컴퓨터 사용능력에 따라 시스템이 구동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모두 업무담당자인 너희들이 해결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투의 말을 들으면 그야말로 직원들은 죽을 상이다.

이 같은 일은 바로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가보조금 시스템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보조금의 부정수급을 예방하고 투명한 집행을 위해 일원화한 e나라도움 보조금시스템!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개통돼 업무 혼선과 이용자의 불편은 예견되었다.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이 불편한 시스템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 재단은 이 같은 민원인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매달 지원사업자를 대상으로 시스템이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원 전화는 매일 울린다.

유감스럽게도 이 시스템은 아직도 정비 중이다.

개통 당시의 문제를 일부 해소했지만 민원으로 업무담당자는 달달 볶이고 있다.

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중앙부처는 콜센터 직원을 배치해 이런 민원에 대응하고 있다. 시스템 개통 초기보다 콜센터 직원의 답변은 정제됐지만 제각각이다.

민원인은 혼란스럽다. 콜센터 직원은 답변이 곤란하면 시스템 질의응답으로 올리라고만 한다. 온 나라가 새 시스템으로 도움을 받기는커녕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물론 담당직원의 업무 이해도에 따라 민원의 만족도도 다를 수 있다.

상반기 지원사업을 종료한 민원인들은 정산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벌써 야단이다. 국가보조금시스템 정산매뉴얼이 최근 공개됐다.

날씨마저 미친 듯이 달아오르는 요즘 서로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하면 좋겠다. 그래도 “에이, 열여덟”은 사양하고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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