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감에 책임감...도민 위한 교회되기 위해 노력"
"소통과 공감에 책임감...도민 위한 교회되기 위해 노력"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7.07.23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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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신 첫 주교, 문창우 신부를 만나다
제주출신 첫 주교, 문창우 신부 인터뷰 사진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일보=부남철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2011년 펴낸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섭리가 저를 이곳까지 이끌었고 그 마지막 부름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세속적 표현으로 하느님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된 문창우(비오) 주교·제주교구 부교구장(54·신성여자중학교 교장)은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올해가 아주 뜻 깊은 한 해이다. 제주교구는 올해 교구 설정 40주년과 제주출신 첫 신부(고승욱 신부)가 배출된 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았다. 그런데 지난 6월 28일은 제주교구 아니 제주도 역사에 큰 의미를 남겼다. 교황청은 이날 제주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창우 신부를 주교이자 제주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교 임명 이후 주교 서품식 준비와 피정, 학교 관리 등으로 바쁜 일정을 지내고 있는 문 주교를 지난 18일 신성여중 교장실에서 만났다.

‘흥분돼 있을 것’이라는 기자의 기대와는 달리 문 주교는 인터뷰가 이뤄진 1시간 내내 담담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섭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제주출신 첫 주교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섭리’에 대해서도 ‘순종’하고 있었다.

-제주출신 첫 주교가 된 소감은.
▲하느님께서 제 인생에 사고를 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세례도 고등학교 때 받았고 신부도 일반대학교를 졸업한 후 신학대학교에 진학해서 늦게 받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주교가 되는 것은 관례 상 이상합니다. 지난 달 20일 교황대사관 연락을 받고 21일 대사관에서 주교 임명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식 발표는 28일에 있었는데 그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저는 아닙니다, 죽여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한국어를 제대로 모르셨는지 “죽여 주십시오”를 “주교 주십시오”라고 들으셨는지 번복은 없었고 지난 4일 충성서약을 했습니다. 주교직을 받아들이면서 우선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개인적 영광이라기 보다는 제주교구를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의 은총과 기도가 모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주 사회에 오순도순한 신앙공동체를 일구겠습니다.

-신부가 된 동기는.
▲고등학교 때 누나의 권유로 성당에 나가게 됐고 고2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했고 1981년 제주대학교 진학한 후에도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군대 제대 후에도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신부가 된 가장 큰 계기는 1987년 6월 항쟁이었습니다. 제주대학교 가톨릭 학생회장으로서 6월 항쟁을 펼치고 있던 막바지에 시위대가 중앙성당으로 가게 되고 6박 7일 농성을 하는데 학생들을 도와주는 신부님들의 모습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1988년 학교 졸업 후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포콜라레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로피아노행을 결정하고 무작정 1년 6개월간의 ‘영성 유학’을 떠났습니다. 솔직히 그곳에서 수도자로 남을 건지 한국으로 돌아올 건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6월 항쟁을 같이 했던 젊음의 고민을 남겨두고 저 혼자 피해왔다는 미안감이 저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하느님이 저에게 ‘시대의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했고 제가 거기에 응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가 된 후에는 늦게 사제가 됐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갖게 됐고 학생운동 출신으로서 시대 안에서 사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생활해 왔습니다.

-주교로서 제주 사회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까.
▲제 외증조부가 1945년 당시 ‘제주여자중학교’를 설립하신 호은(湖隱) 김홍빈 선생님이십니다. 제주 여성 교육의 상징인 제주여자중학교를 제 외증조부께서 설립을 하셨고 외손자인 저는 신성여중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외증조부의 뜻을 이어받아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주교가 된 지금도 제가 제주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감은 소통과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뜻을 제 사목표어와 문장에 담았습니다. 제가 제주출신인 만큼 제주를 향한, 제주를 위한 교회로 변화하겠습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교회는 제주를 위해서 죽었는가’라는 물음 아래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제주도민을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 고민하겠습니다. 특히 흔들리고 있는 가정을 하느님의 뜻에 가깝게 회복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정은 단순한 가정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제가 그 실천에 앞장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주 사회에 대한 생각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지향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사회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이분법적으로 분열하다 보니 서록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제주는 그동안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제주만의 공동체 문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환대문화’라고 말합니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문화,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문화가 존재해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존재해야 제주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권력적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역할을 내세우는데서 제주 사회가 혼돈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 문화에서 남을 향한 문화로의 변화가 제주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그 변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자는 인터뷰 내내 문 주교로부터 제주 현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문 주교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이렇게 대답했다.
“사제가 된 후 많은 분들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않는 모습에서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신학대학교 교수 신부가 되면서 돌이켜 보니 급하게 인생을 판단해 왔다는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성여중 교장이 됐을 당시에는 진정한 사제적인 마음의 준비가 됐습니다. 신성여중 초대 교장이신 최정숙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진정성을 갖고 헌신하는 것이 이 땅의 사제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편 문 주교의 주교 서품식은 오는 8월 15일 오후 8시 제주시 한림읍 소재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린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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