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다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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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탄핵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넷째 주에 79%로 잠시 떨어졌지만 여전히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결과를 두고 어떤 야당 정치인은 잘못된 여론조사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득표율과 투표율을 계산한다면 (실제 지지율은)대략 35% 정도”라고 하면서도 그 근거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주장에 대해 여론은 싸늘하다. 주목 받지 못하는 야당의원의 돌출 발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정권 초기에 잘못된 여론 조사를 믿고 (정책을)밀어붙이면 결국 국민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흔히 정권 초기에 취하기 쉬운 여론 조사의 함정’과는 무관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각종 미디어에서는 훈수가 쏟아지고 있다. 그 훈수의 대부분은 ‘민의’와 ‘협치’를 키워드로 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의가 거론되는 것을 선의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지율이 거품과도 같으니 경계하라’는 의미라면 받아들일 만하다. “정치지도자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고 소통해야 개혁이라는 열차에 시민들을 태울 수 있다”는 말은 감동적이다. “협치의 길은 ‘최악의 협상이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열린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한 뒤 두 달 동안 장관인선과 정부조직법 및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아직은’ 그렇다.

‘맹자’ 양혜왕장구 상편에서는 앙혜왕이 이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과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마음을 다할 따름입니다. 흉년이 든 하내지방의 백성을 하동지방으로 이주시키면서 하동지방의 곡식은 하내지방에 지원했습니다. 하동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했습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웃나라의 백성이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혜왕은 자신의 정치를 진심(盡心), 곧 마음을 다하는 정치로 자신했다. 이렇게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왕도정치의 조건을 갖췄는데도 민심이 따르지 않는 것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맹자가 내놓은 대답은 ‘내로남불, 때를 놓치지 말라’다.

‘전장에서 오십 걸음을 도망한 자가 백 걸음을 도망한 자를 비웃는다’는 고사는 맹자의 대답에서 비롯됐다. 요즘 말로는 ‘내가 하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그러면 왜 맹자는 양혜왕의 진심을 ‘내로남불’이라고 했을까? 맹자의 대답을 더 들어보자.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이 풍족하게 되고, 촘촘한 그물을 치지 않으면 수산물이 풍족하게 되며 알맞은 때에 벌목하게 되면 임산물이 풍족하게 됩니다. 이렇듯 물산이 풍족하게 되면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불위농시(不違農時), 흉년을 핑계 삼지 않아야 한다. 민생을 팍팍하게 하는 것은 흉년이 아니라 농사철을 어기는 것이다.

민생이 팍팍하다. 2015년 2월,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의 법안 늑장처리를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부동산 3법도 지난해 어렵게 통과됐는데 비유하자면 퉁퉁 불어터진 국수였다”, “그걸 먹고도 경제가 힘을 냈는데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느냐.”

하지만 정작 진실을 밝히고 물러설 때를 놓친 대통령과 당시 여당 때문에 국민들은 지난해 11월 9일부터 올해 4월 29일까지 약 6개월이라는 시간과 삶을 뺏겼다. ‘내로남불’은 상대를 공격할 때도, 내가 공격당할 때도 쓰이는 양날의 검이다. 민의와 협치를 들고 자해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그런 것들을 핑계 삼아 국민의 시간과 삶일랑은 더 이상 빼앗지 말고, 이제라도 정치의 시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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