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유언장
어느 노인의 유언장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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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오. 제주문화원장/수필가

[제주일보]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했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 됐다. 장성한 두 아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고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어느 날 두 아들은 집에 와서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열어보려 했으나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속으로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숨겨 놓은 금덩어리가 아니겠는가?.’

아들들은 그 때부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이상한 효심이 넘쳤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돌아가셨고, 아들들은 장례를 치룬 후 침이 마르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궁금한 궤짝을 열어 봤다.

그런데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화를 냈다. 서로 쳐다보며 소리 없이 말했다.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생을 향해 “왜? 궤짝이 탐나느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이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 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아내와 타협을 했다.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는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막내아들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엉엉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딸도 달려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 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번 아니, 수만번 그들은 나를 울게 했고, 또 웃게 했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자식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이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으로, 지금은 사금파리와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기억들만 남아있구나!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같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이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 글에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말이 생겼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고 한 고사가 새삼 떠오른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 삶의 깊이와 방향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이런 유언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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