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솟는 절벽 '박수기정'에 오르니 미지의 세계 온 듯"
"샘물 솟는 절벽 '박수기정'에 오르니 미지의 세계 온 듯"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1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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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 28. 제9코스(대평~화순올레)-대평포구~월라봉(3.1㎞)
대평포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

[제주일보] # 요즘 안덕면 ‘대평리’는

‘안덕면 대평리’ 마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우리 대평리는 서귀포시 하예동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서 해안지역에 아주 밀집해 취락이 형성돼 있고, 마을 주위에 기암절벽과 군산이 둘러싸여 있으며, 특히 ‘박수’는 낚시인을 위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앞으로 화순항, 산방산, 송악산, 용머리지구의 관광지 조성과 더불어 더욱더 관광지로 각광 받을 것이다./ 넉넉한 인심을 가진 우리 주민들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난드르(넓은 들)’ 우리 대평리를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올레 9코스를 가보니, ‘주민동의 없는 주택단지건설 반대한다’라고 마을회, 청년회, 부녀회, 어촌계 명의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내용을 알아본 즉 모 부동산 신탁전문회사가 마을회관 가까운 곳에 지상 4층 연면적 5062㎡ 규모의 연립주택을 짓고 있어, 200여 가구가 살던 작은 마을에 근래 15년 사이에 100여 가구가 늘어난 것도 불안한데 다시 48가구가 늘어나면 마을 상수도나 오수관 등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고, 이곳에 앞으로 또 48가구가 더 늘어날 추세여서 이주민들과 토착민들이 화합도 문제라는 것이다.

 

# 몰질(말길)을 걸으며

마침 점심 때여서 포구에 있는 식당에서 싱싱한 한치로 물회를 시켜 먹고, 9코스로 들어섰다. 대평포구는 바다 쪽으로는 열려 있지만, 서쪽으로 ‘박수기정’이라는 월라봉 낭떠러지 때문에 해안선을 잇는 길이 없어 예전엔 큰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올레 길도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낭떠러지 위쪽 길을 걷도록 돼 있다.

‘몰질’ 들머리 쪽에 세워놓은 만화로 된 안내간판을 보니, “고려 말기 원나라가 제주를 통치할 당시 감산리 동동네 쪽에 군마육성소가 있었는데, 대평리 포구인 당캐와 이 군마육성소 사이에 물건을 운반하는 육상로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원나라 조정에 진상할 적마를 이 길로 당캐까지 수송하여 공마선에 실은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라고 썼다.

과연 그 내용이 정확한 건지 머릿속에 혼돈이 와, 그냥 단순하게 좁고 험한 길을 덮은 나무와 아는 체하며 걷는다. 느릅나무나 천선과나무 외에도 후박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돈나무,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같은 상록수와 푸조나무, 예덕나무, 상동나무, 꾸지뽕나무, 상산, 꾸지나무, 쥐똥나무에다가 마삭줄, 후추등, 칡, 으름덩굴, 노박덩굴, 송악까지 덩굴식물들이 마구 얽혔다.

 

# 박수기정 위를 걸으며

오름 자락은 비교적 넓은 밭으로 돼 있는데, 그 밭길을 가로 질러 남쪽 절벽 위를 돌도록 이어졌다. 포구에서 절벽으로 보이는 해식단애에는 생수가 떨어지는 곳이 있는데, 이곳 만화의 설명으로는 ‘박수’는 ‘바가지로 마시는 샘물’, ‘기정’은 ‘솟은 절벽’의 합성어란다. 위험한 곳이지만 유난히 붉은 흙도 있고 비가 온 뒤로는 폭포도 제법 커서 물 맞는 장소로도 유명했다.

그곳은 암석이 많이 떨어져 나가 대포나 갯깍 같은 주상절리의 모습은 볼 수 없고 무질서하게 떨어져 정리가 안 된 바위와 그 바위 무늬나 생김새에서 마치 달 표면 같은 미지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금은 낚시꾼들이 가끔 들락거릴 뿐 위험해서 다니는 사람이 없으나, 과거에는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라도 어떻게든지 가깝게 가는 길을 내보려 했던 ‘좃은다리’ 같은 자취들을 볼 수 있다.

# 볼레낭길과 호산봉수

‘볼레낭길’이라면 아무래도 ‘보리밥나무가 많은 길’이라 생각하고 여러 덩굴 속을 뒤졌으나, 보리밥나무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오름과 이어진 군산에는 보리밥나무가 흔하게 보이는데, 아무래도 식생이 바뀌었는가 싶다.

참나리꽃이 피는 시기여서 더러 핀 것을 보니, 안타깝게도 가루까지 벌레가 달라붙어 꽃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8코스 해안을 걸을 때도 나무의 연한 줄기에 붙은 하얀 것들이 자꾸 신경이 쓰이더니, 여간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이걸 쉽게 구제하는 방법은 없을까?

‘봉수대’란 간판이 눈에 띄어 찬찬히 둘러본다. 대부분의 봉수는 오름 정상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눈에 잘 띄는 절벽 위에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오름 정상이라 특별한 시설 없이 불이 나지 않도록 방화선을 구축하고 불을 피우기 위해 한편에 흙이나 돌로 화덕처럼 만든 게 다였다. 그러나 이곳 호산봉수는 산봉우리가 아니어서 돌을 조금 쌓아 돋우어 만든 것이 바로 남서쪽으로 연결되는 송악산의 저별봉수와 비슷한 구조다. 그러나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산봉수는 정상에 아직도 원래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 월라봉과 유반석

봉수대에서 조금 더 가면 바로 오름 정상 쪽으로 오르도록 길이 나 있다. 골짜기로 가는데 암소들이 누웠다가 더러는 일어서고 더러는 그냥 엎드린 채 눈을 껌뻑인다. 아무래도 주인이 물 먹이러 온 줄 알았다가 실망한 눈치다.

그곳엔 탱자나무가 있어 열매가 구슬만큼씩 달렸다. 조금 더 간 곳에는 과거에 사람들이 살았었는지 팽나무가 의외로 많다.

월라봉은 감산리에 속한 오름으로 동쪽으로 군산과 인접해 있다. 산북에 감산, 서쪽에 화순, 남동쪽에 대평리가 있어서 그 경계를 이루며 높이 200.7m에 둘레 4186m로 북동향과 남서향으로 벌어진 2개의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다.

서쪽 자락으로 난 길로 바위와 나무 사이를 걸어 정상으로 향하는데, 이른바 유반석이 나타났다. 돌출된 곳에 무너질 듯 아찔하게 서있었는데, 풍수상 이곳 화순리 동동네에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게 한다는 전설 속의 바위다. 이 유반석과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서쪽 썩은다리 오름에 있는 무반석과의 얽힌 전설이 흥미롭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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