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류 약재, 조선 임금님 병구완에 빼놓을 수 없던 '감초'
제주 감귤류 약재, 조선 임금님 병구완에 빼놓을 수 없던 '감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1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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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한의약, 그 역사속으로…<20>제주 과원의 설치와 그 성격(10)
허준의 ‘동의보감’ 내 담음과 이진탕에 관련된 내용 수록 부분-2쪽.
김일우 문학박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제주일보] 조선의 왕은 27명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이 44세라 한다. 조선의 왕은 비교적 단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정치적 이유 등에 따른 요절도 크게 작용했지만, 왕의 질병도 못지않았다. 양의(洋醫)의 관점으로는 왕이 피부궤양(욕창), 뇌혈관장애, 폐결핵, 당뇨로 사망한 경우의 비율이 높다고 본다. 이들의 질병은 운동 부족 하에서의 과식·과음, 호색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정치적 상황 등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도 근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한의사도 커다란 사건이나 격변이 왕의 몸과 마음에 충격을 줬고, 그것이 바로 질병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고 논한 적이 있다. 이들의 이해는 설득력이 높다고 하겠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왕도 오직 감귤류 열매의 약재로서 제제한 한약으로는 치료가 가능치 않은 병에 걸릴 때가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주약재이면서도 다른 약재도 섞어놓는 가공과정을 거친 뒤, 그 제제가 왕의 병구완에 쓰인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보조약재로서 한약조제에 넣을 때도 많았다.

우선,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왕의 병구완을 위한 제제 및 약용과 관련해 주약재로 쓰인 대표적 경우를 보자. 선조는 1587년(선조 20)~1607년(선조 40)의 20년 동안 5차례 걸쳐 이진탕(二陳湯)을 복용했음이 확인된다.

‘동의보감’에 이진탕은 담음(痰飮, 생체 내 정상체액이 기 흐름의 원활치 않음 등으로 제대로 순환되지 못한 채 변질화가 이뤄지는 한편, 그 체액이 신체의 일정 부위에 뭉쳐있거나, 혹은 일정 부위로 분비돼 나오는 증후)으로 인한 여러 질병을 두루 치료한다고 돼 있다. 그 증후가 구토와 메스꺼움, 어지럼증과 두근거림, 발열과 오한의 반복·엄습,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통증이란 사실도 나온다. 이들 증후는 모두 담음으로 말미암거니와, 사람의 일상에서 찾아오는 증세의 십중팔구에 들어간다고도 본다. 이진탕은 ‘승정원일기’에서도 350건이나 검색되는 한약이다. 이는 왕가의 임상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처방된 한약의 하나였기 때문일 듯싶다.

조제에 대해서는 반하(半夏, 독성 제거의 1차적 수치로 끓인 물에 7회 씻은 것) 2전(7.5g), 귤피와 적복령(赤茯苓) 각 1전(3.75g), 감초(꿀을 묻혀서 진 노랗게 볶은 것) 5푼(1.87g)의 약재를 썰어서 1첩으로 해 생강 3쪽과 함께 물에 달인다라고 나온다. 이때 귤피는 귤껍질에서 흰 속을 긁어낸 ‘橘紅’(귤홍)이며, 그 약리적 효과가 ‘담을 삭이고 기의 운행을 순조롭게 해 준다’는데 있다고도 한다. 귤피가 이진탕 조제에서는 가장 많은 양을 집어넣은 반하와 함께 주약재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조가 5차례 이진탕을 복용한 경우는 모두 찬바람을 맞은 탓에 담병(痰病)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선조는 담이 위(胃) 입구에 모여 꽉 막혀서 가슴앓이 증후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콧물이 흐르고, 기침하는 증세도 있었다. 저녁 7~9시 사이에 호흡이 가빠지며, 가래도 성했던 증후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어의(御醫)도 이진탕의 처방을 내린 다음, 이진탕, 혹은 이진탕에 각종의 보조약재도 섞어 조제한 한약을 선조에게 올려 복용토록 했던 것이다. 이로써 선조의 심한 가래가 조금 가라앉기도 했다.

한편 계귤차와 강귤차는 각각 통계피와 생강에 귤을 배합해 달여 조제했듯이, 귤도 주원료가 되고 있다. 이것도 왕의 약용으로 조제됐던 대표적 경우에 해당한다.

영조가 1776년(영조 52) 가래와 현기증, 손발이 차가운 증상으로 사경을 헤매자, 약방에서 계귤차를 올렸다. 이어 부자(附子) 1돈을 더한 계귤차를 재차 올렸고, 다음에는 건공탕(建功湯, 인삼·백출 등을 주약재로 삼아 제조한 이중탕의 이칭)에 부자 1돈을 더해 달여 드렸다. 그래도 차도가 없자, 강귤차를 마시게 했다. 이로써 손발의 온기를 되찾는듯하다 곧 다시 차가워졌다. 이후 어의가 가래를 제거코자, 끓였다가 식히기를 반복한 물(百沸湯)을 먼저, 이어 곽향(藿香) 1돈을 더해 달인 계귤차도 들였다. 왕세손(훗날의 정조)이 영조에게 백비탕을 떠서 드리니, 영조가 가느다란 음성으로 계귤차도 찾았다. 계귤차도 왕세손이 떠서 드렸으나, 영조는 가래침과 삼킨 찻물을 토해냈다. 이 급박의 찰나에 의원이 권유했는지, 왕세손이 다시 계귤차를 들이게 했다. 이렇게 올린 5번째의 계귤차는 영조가 입도 대지 못한 채 그냥 남았다. 그가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영조는 조선의 왕 가운데 83세로 최장수를 누렸고, 재위기간도 52년으로 가장 길었다. 그런 그가 생사기로에서 마지막으로 접했던 식료가 귤을 주원료로 조제한 약용의 계귤차였던 것이다.

다음,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한약조제의 보조약재로서 첨가되는 경우를 보자. 이는 각종 사서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나온다. 여태 ‘약방의 감초’란 속담이 회자된다. 속담은 한약조제에 감초가 들어가는 처방이 많아, 한약방에는 항상 감초가 있다는데서 유래했다. 감귤류 열매의 약재, 특히 귤피는 감초, 아니 감초 이상으로 한약조제에 보조약재로서 첨가될 때가 수없이 많았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전통적 의서에 ‘진피는 처방에 가장 많이 쓴다’라 했던 것과도 딱 들어맞는 사실이기도 하다.

내의원은 왕과 왕실가족의 임상을 전담했던지라 온갖 약재와 뛰어난 의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왕가의 임상 관련 각종·각양의 진단·처방에 따른 한약조제에 나섰다. 이때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수없이 쓰였던 것이다. 이들 약재는 제주로부터도 상납 받고 있었다. 한편 내의원에서 빈번하게 쓰인 약재는 그 약재의 약리적 효능에 선전효과도 더해졌을 듯싶다.

이로써 제주 감귤류 열매의 약재도 향약으로서의 선호도가 가속화됨과 동시에, 국민보건의료에서 찾는 추세도 확산돼 나아갔을 것이다. 이는 조선 정부가 민폐를 야기할 정도로 제주 감귤류 열매를 거뒀고, 그것의 다양한 국가적 용도 가운데 약재로서의 쓰임새에 압도적인 물량이 들어갔던 사실로서도 방증된다고 하겠다.

 

▲밀기울을 사용해 좋은 진피 만드는 법 - 독성 제거·향기 증강…비린내도 완화

김태윤 한의학 박사·(재)제주한의약연구원 이사장

통상, 한약 가공을 위해 볶을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청초법(淸炒法)으로 약재 자체만 볶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약에 고체의 보조재료를 첨가해 볶거니와, 이를 가보료초법(加輔料炒法)이라 일컫는다. 후자 경우는 여러 가지를 첨가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일전에 말한 밀가루이다. 그럼에도, 현재에 들어와서는 밀기울(麩)을 더 많이 쓴다. 곧, 밀을 빻아 생긴 밀가루보다 그를 체로 쳐서 남은 찌꺼기를 한약가공의 첨가물로 한층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연원도 깊다.

밀기울은 3세기 초반 백과사전류의 ‘광아(廣雅)’에서 소개되고 있다. 이후 약물로서의 성질과 그 유용성이 거론돼 나아갔다. 8세기 초반 천짱치(陳藏器)는 ‘본초습유(本草拾遺)’에서 “참밀은 가을에 파종해 이듬해 여름에 익어 사시사철의 기운을 족히 받는다. 자연히 차고 따뜻한 기운을 함께 겸하니, 밀가루는 따뜻하고 밀기울은 차갑다(小麥 秋種夏熟, 受四時氣足, 自然兼有寒温, 麵熱麩冷)”라 했던 것이다. 11세기 후반 ‘본초도경’에서도 “밀기울의 성질은 반대로 차가워서 속을 편케 하고 열을 사라지게 한다(麩性復寒, 調中去熱)”고 했다. 또한 차가운 기운을 지님으로, 열기를 식힐 뿐 아니라 자극성을 누그러뜨리는 보조매개물로 사용한다는 점도 거론됐다. 16세기 중반 ‘본초몽전’에서 “밀기울은 강한 성질을 억제한다(麥麩皮制抑酷性)”고 했던 것이다.

한편 18세기 초반 데라시마료안(寺島良安)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서 “불로 물체를 말리는 것을 쬔다고, 불로 말리면서 덖는 것을 볶는다고 한다. 대개 볶으려면 질그릇을 사용하고, 불에 쬐려면 배롱을 쓴다(以火乾物曰焙, 火乾熬曰炒, 蓋炒則用沙鍋, 焙則用焙籠)”라 했다. 이는 가공방법과 용기의 관련성을 말함이다. 질그릇은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는지라 음식의 본맛이나 약재의 성질을 지켜준다. 그래서 질그릇이 수치용의 용기론 안성맞춤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불에 쫴 말리려면 휜 대오리로 만든 배롱을 사용해 화로, 혹은 가마솥 따위에 얹어 말린다.

현재도 밀기울을 사용해 진피를 만든다. 우선 중화(中火)로 용기를 가열한 다음 밀기울을 뿌린다. 이어 연기가 나면 미리 고른 진피를 투입하고 부단히 젓는다. 이후 약물표면이 황색을 띠면 꺼내서 밀기울을 체로 걷어내고 차가운데서 말린다. 용량은 통상 10㎏의 약물에 1~2㎏ 밀기울을 사용한다. 이로써 밀가루 사용의 수치로서 얻는 독성 제거와 향기 증강 효과뿐만 아니라 비린내 완화에도 탁월한 효과를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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