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의 잡초를 뽑으며
마음 밭의 잡초를 뽑으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10 18: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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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제주일보] 나는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당에 나가 앉는다.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불거나 심지어 비가 오는 날마저도 마당가를 서성이거나 자리잡고 앉아서 나무를 다듬거나 잡초를 뽑는다.

요즘처럼 기온이 올라가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고, 나무들이 자라는 속도가 손의 움직임을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주말은 더욱 분주해진다. 돋아나는 나무의 순을 정리하고 꽃이 진 자리를 다듬고 화분을 빼곡이 채운 뿌리를 정리하여 분갈이를 해 준다.

특히 잔디를 깔아놓은 마당 관리는 보통 이상의 수고를 요한다. 지난해까지는 불편하긴 해도 운신을 하시던 노모가 소일삼아 잔디밭의 잡초를 뽑아줬는데 지난 겨울 인공관절 수술로 쪼그려 앉기가 불편하신 탓에 내가 직접 마당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올해는 유난히 봄 가뭄이 심했다.

그러기에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는 잔디는 불에 데인 자국처럼 곳곳이 누렇게 마르기도 하고 퍼렇게 웃자라 보기 싫게 솟는 곳도 있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모양이 보기 싫어 깎아버렸다.

아뿔싸, 웃자랐던 자리는 뿌리 부분의 묵은 이파리들이 드러나면서 노랗게 말라들더니 급기야 타들어가면서 마른 자리는 더 넓어지고 말았다. 깎아 놓고 물관리를 잘하면 되겠거니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뿌려줘도 얼른 싹이 돋아나지를 않는다. 급기야 벌겋게 타들어가서 뿌리까지 말라죽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귀퉁이의 잔디들을 뜯어다가 죽은 것들을 들어내고 보식(補植)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서는 집중적으로 물관리를 하고 비가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가 넉넉히 내리지를 않는다. 아무리 부지런히 물을 줘도 내리는 비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사는 일이 이렇다. 공들이고 정성을 쏟은 만치 티가 나고 성과가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지나는 사람들은 돌담 너머로 구경하며 정원이 참 예쁘다고 하지만, 올해 만큼은 그 수고의 결과가 헛헛하기만 하여 실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잔디 마당을 관리하는 데 물관리는 차라리 쉬운 일에 속할 수도 있다. 바로 잡초와의 싸움이다. 잡초는 뽑고 돌아서면 이내 숨바꼭질하듯이 대가리를 내민다. 그나마 잔디 위로 솟는 개망초나 뽀리뱅이, 바랭이 정도는 차라리 쉽다.

잔디처럼 뿌리로 번식하는 괭이밥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잔디에 비해 잎이 넓고 클로버 모양을 한 이놈들은 그 번식력으로 치자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잔디 뿌리 사이를 파고들면서 줄기를 뻗는데, 뽑다보면 잔디 뿌리까지 상할 수밖에 없다. 씨를 맺는 기간도 엄청 짧고 씨마저도 얌전하게 그 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손대면 톡하고 터져 사방으로 뿌려지고 땅에 닿는 족족 싹을 틔우고 번식한다. 방치했다가는 잔디밭은 순식간에 망가지고 만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호사가의 취미나 이국 취향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강퍅한 삶을 생각하면 여유롭게 잔디밭에 풀이나 뽑고 나무 손질이나 하는 것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주중에 모자란 머리를 짜고 짜내서 정신을 혹사시키고 나면, 정신에 쉼표 하나쯤 찍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 밭에도 제법 잡초들이 돋아나고 말라붙은 자리도 보이게 마련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게 되면 전체가 말라죽거나 잔디밭에 괭이밥이 번지듯이 정신과 마음을 잠식할 것이기에 주말마다 공들여 잡초를 뽑고 나무를 손질하는 데 오롯이 시간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나무를 손질하고 마당의 잡초를 뽑는 일은 호사가의 취미이기보다는 내 나름의 마음을 다듬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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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2017-07-11 14:20:09
잔디를 뽑고 다듬는 일이 잘 살아내기 위한, 마음을 다듬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라는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

제 마음에서 제 맘대로 자라는 잡초를 뽑으며 오후를 건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