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의 두 얼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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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주일보]요즘 인천에서 8살 초등학생을 살해 유기한 10대 소녀의 재판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저항이 어려운 어린이를 대상으로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사체를 유기한 것,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 없이 태연하게 SNS에 글을 남기고, 평소 고양이를 죽여 사체를 해부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더 놀라운 상황이다.

과연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계획적인 그 행동이 심신미약에 의한 것인지 이중인격 때문인지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전문가들은 그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4년 한 연쇄살인범에 대한 조사에서 사이코패스라는 판정이 나오면서부터 우리나라에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자와 분명히 다르다. 정신질환의 경우 환청과 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해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폭력적인 행동이 유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매우 드물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그 사람의 특성일 뿐이며 현실을 판단하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고 치료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소시오패스라는 개념도 있다. 성격적인 문제가 사회의 영향과 인생 초기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회학자나 범죄학자들은 이 개념을 선호한다. 반면 심리학적·생물학적·유전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어떤 전문가가 평가했느냐에 따라 사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될 수 있다.

사실 사이코패스는 정신건강의학에서 사용하는 진단명이 아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진단이 매우 유사한데 진단 기준에 반사회적·범죄적 행위가 포함된다. 그래서 범죄자 중의 상당수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진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교도소에는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종합해서 볼 때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후회와 죄책감이 없고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화술에 매우 능하지만 깊이가 없고 과장이 심하며 자기중심적이어서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다. 충동적이고 자극을 추구하나 절제를 잘 못하고 책임감이 없어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사이코패스 또한 우리 인류에 꼭 필요했던 유전 성향이라고 주장한다. 전쟁터의 군인이 적군에게 감정 이입이 돼 연민을 느껴 공격에 회의가 밀려 온다면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에서는 승리를 위한 일념으로 가득해야 하고 공감 능력과 죄책감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 또 지도자는 일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일도 밀어 붙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며 자책에 시달린다면 누가 지도자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이코패스는 전쟁터의 장수에 필수적인 유전자라는 의견이다. 그런데 전쟁이 없는 세상이라도 경쟁이 과도하고 마음의 상처가 방치되는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그 전쟁 유전자가 자신의 때로 판단하고 발현된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유전자를 타고 났어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랑 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는 해도 능력과 매력을 갖춘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반면, 육체적으로나 성적으로 학대를 받으면 결국 그 사람을 살인마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의 범인도 심한 따돌림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한 사람을 살인마로도, 훌륭한 지도자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전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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