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아가씨와 가슴 아프게
흑산도 아가씨와 가슴 아프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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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제주일보] 그러니까 1965년 봄날이다. 작사가 정두수씨가 작곡가 박춘석씨와 충무로에서 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만났다. 둘은 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음 히트곡을 뭘로 할까 하는 고민을 나누며 만나곤 했다. 이날은 ‘다음 이미자 곡은 뭘로 하지’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막 배달된 석간신문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꽂히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흑산도 어린이들과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흑산도 어린이들의 꿈, 이뤄지다! 영부인 도움으로 해군함정에 실려와 서울 구경도 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학용품을 받았다.’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거센 풍랑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육 여사가 직접 나서서 해군함정을 이용해 소원을 들어줬다는 미담 기사였다.

정씨는 무릎을 탁 치며 박씨에게 “이번 이미자 노래는 흑산도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이 조선 정조 때 유배지 흑산도에서 지냈던 내용과 당시 전남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도 바다를 바라보며 흑산도의 형을 간절하게 그리워했다는 내용 등을 말했다. 정씨는 원래 시인으로 정약전과 정약용의 형제애에 대한 사연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였다.

정약용은 특히 둘째 형인 정약전을 어린 시절부터 잘 따랐고,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에도 형에게 심적으로 많은 의지를 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약용은 형을 떠나보낸 뒤 애통해 하며 글을 자주 썼다.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형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다. 몸이 야위어가고 있을 형을 걱정했고 편지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몰래 만나기로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씨는 이런 사연들을 떠올리며 작시를 하기 시작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흘러온 나그네인가 귀양살인가~.’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정약전의 외로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육지는 동생이 귀양살이하고 있는 강진을 말한다. 따라서 이 노래는 원래 ‘흑산도 아저씨’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정씨는 생전에 “정약전을 소재로 했기에 따지고 보면 ‘흑산도 아가씨’가 아니라 ‘흑산도 아저씨’인 셈이다”라고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다.

이미자는 곧 ‘흑산도 아가씨’의 앨범을 냈고 크게 히트를 쳤다. 1966년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됐다. 선배 가수 백설희가 리메이크 하기도 한 ‘흑산도 아가씨’는 이미자의 베스트 CD에 빠지지 않고 수록되는 대표곡이 됐다. 1997년에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흑산도 아가씨’의 노래비가 들어섰고, 2012년에는 흑산도 아가씨 동상 제막식 참석을 겸해 이미자가 현지에서 공연을 했다.

장면을 잠시 바꾼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와 비슷한 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비를 맞으며 정씨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젊은 여주인이 혼자 라디오 앞에 앉아 열심히 드라마를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술집에서 뛰쳐나왔다. 소년 시절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보낸 시절이 떠올랐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저절로 ‘무엇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바다와 나 사이를 짓누르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써내려 갔다.

열 아홉의 신예 남진이 혜성같이 등장했고 국내는 물론 일본 열도까지 뜨겁게 달궜다. 정씨는 그렇게 이미자와 남진에게 약 500곡씩 써 줬다. 휴가철이다. 추억의 노래라도 한 번쯤 시원하게 음미해 봄직 아니한가. 그게 인생살이 한 가지일 수도 있다. 부담없이 슬프든 즐겁든 애절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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