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여자의 자리
남자의 자리, 여자의 자리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7.02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남자연구원 2명과 여자 연구원 3명이 연구과제를 놓고 토론하고 있는 광경을 대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우선 남자 연구원이 테이블 맨 윗자리에 앉았을 때다. 대학생들은 그 남자가 이 연구과제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여자 연구원이 테이블 맨 윗자리에 앉은 경우다. 대학생들은 그 여자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꼽지는 않았다.

그뿐만 아니다. 두 남자 연구원이 대학생들로부터 각각 선택받은 표는 여자 연구원 3명이 모두 얻은 표보다 많았다. 미국의 심리학자 나탈리 포터와 플로렌스 게스가 실시한 이 실험의 결과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말하는 자료로 많이 인용된다.

‘여성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이렇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어떤가.

▲역사의 흐름을 보면 대체적으로 시대가 내려오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낮아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초기 농경사회에서는 모권(母權)이 강했다. 지모신(地母神) 신앙을 가졌던 부족 세력의 제사를 주관한 사람들은 여사제들이었다. 신라시대 때 선덕·진덕·진성 등 세 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가계혈통을 이을수 있는 자격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리고 여왕들이 통치에 예언적 방법을 쓰는 등 샤만의 성격이 짙었다. 신라 여성의 종교적 위치가 남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거나 적어도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남자의 자리는 어딘가.

남자를 가리키는 한자, ‘사내 남(男)’자를 보자. 파자학(破字學)에서는 이 ‘남(男)’자를 논밭에서 힘써 일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남자란 즉 농부인 셈이다. 고대 중국의 한자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설이다. 결국 남자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사전도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 또는 사내다운 사내라고 풀이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오면 국가 권력기관은 완전히 남성의 전유물이된다. 여성은 제례와 종교, 가사활동을 하면서 역할이 축소된다. 조선시대 초까지는 모계(母系)·외가(外家) 중심의 고려시대 유습이 강했다. 그래서 여성도 가족 내에서는 그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게 간주됐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여성의 지위는 추락한다. 17세기부터 우리나라 사회는 조상에 대한 제사의 계승과 종족의 결속을 위한 부계(父系)친족제도가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종법제(宗法制)가 정착된다. 문중이 강화돼 적장자를 우대하는 부계 중심의 양반사회로 변모되어가면서 여성은 가부장제에 깊이 예속돼 갔다.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뒷바라지 역할로 퇴행하고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이 뿌리박혀 완전히 집안으로 유폐된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이후 여성들은 “전생(前生)에서 죄많이 지은 자가 이승에 여자로 태어난다”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진 요즘에는 자녀를 낳아 기르고 음식을 준비하는등 집안을 돌보는 일만이 여성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다. 남자에게 매여서 한(恨)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은 옛날 얘기다.

▲7월 첫째주. 1일부터 7일까지는 양성평등 주간이다. 제주도는 1~7일 ‘양성평등이 뭐 마씸? 남녀가 몬딱 지꺼진 거우다’를 주제로 ‘성 평등을 실천하는 한마음 축제’를 열고 있다. 여성주간이라는 명칭이 양성평등 주간으로 바뀐지도 3년이다.

이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편견도 거의 사라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여성들의 진출이 괄목하다보니 오히려 남자의 쓸모가 줄어든 세상이다. 집안 내 서열도 남편은 강아지 다음 순위라고 하니까. 전구 갈아끼우고, 쓰레기 버리고, 무거운 가구 옮길 때나 쓸만할까.

중년 이상 남성들 사이에선 “아침에 나오려면 아내가 잠에서 깰까봐 까치발로 걷는다”, “이사할 때는 아내가 아끼는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이다. 이런 얘기들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무슨 편견, 그야말로 ‘여성 천국’이다.

‘쓸모없는 남자’를 ‘bad bargain’이라고 한다. 본래 쓸데없이 비싸게 산 물건을 가리키는 데 이제는 그런 뜻이 됐다.

역사는 윤회(輪回)한다고 하지 않은가.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