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 ‘책 읽기 갈증’ 풀어준 도심 속 명소, 문화 사랑방 되다
제주인 ‘책 읽기 갈증’ 풀어준 도심 속 명소, 문화 사랑방 되다
  • 고현영 기자
  • 승인 2017.06.27 1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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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도민이 세운 영주서점 등장…광복 직후 우생당 설립, 현재까지 굳건
광복 직후 문을 연 우생당은 1950년대 후반 제주시 원정통(관덕로)에 둥지를 틀어 6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은 옛시절 우생당(사진 왼쪽·출처=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과 현재의 우생당(오른쪽).

[제주일보=고현영 기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쾌쾌한 종이냄새가 몸으로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넘김이 투박하다. 눈과 손 그리고 가슴이 먹색의 글자를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어느새 난 책 속의 주인공이 다.

액정화면을 터치로 넘기며 전자책을 읽는 시대다. 그래서 종이책의 권유는 다소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무게감, 종이의 넘김, 여백 등은 독서하는 무의식중에 오감을 동시에 사용하도록 한다. 이것이 책의 매력이다. 서점에 머물게 되는 이유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 제주에 ‘책방’이 처음 문을 열었다. 일본인이 경영한 소판서점(小坂書店·고사까쇼덴)이 그것이다. 책방은 제주읍 삼도리(전 나사로병원 북측 위치)에 자리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출간된 잡지나 문구류를 팔았다. 그래서 당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일본인들이 주를 이뤘다.

이후 남문통에 상가가 형성되면서 1920년대 초, 영주서점(瀛州書店)이 문을 열었다. 옛 남양문화방송 맞은편 남쪽 건물이 서점이 있던 자리다. 영주서점은 당시 경성일보(1906년 9월 창간한 일본어신문, 통감부 기관지) 제주지사를 운영하던 안산 고성주씨가 설립해 신문지사와 함께 운영했다. 이전에 고사까쇼덴도 개점을 했지만 제주도민이 세운, 서점의 효시가 된 곳이 바로 영주서점이라 할 수 있다.

영주서점은 전국적으로 보급망을 갖추고 있는 경성일보의 명성에 힘입어 이미 신문 보급 통로도 확보됐으며 일본 잡지 구독자들로부터 인기도 좋아 운영 기반이 탄탄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이 두 서점은 광복 직후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도민을 비롯, 제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신문·잡지·일반 도서의 구입에 애를 먹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대한민국은 광복의 기쁨을 맛본다. 이듬해 전라남도 관할에 있던 제주는 독립적으로 분리돼 도(島)에서 도(道)로 승격됐다. 단순한 섬의 도시에서 시(市)와 군(郡) 따위를 관할하는 지방 행정 구역이 된 것이다. 당시 초대 도지사는 박경훈이다.

이러한 사회 혼란 속에서도 상업 활동은 꿈틀거렸다.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공공기관의 운영도 서서히 안착되면서 도서·문구류의 수요도 늘어났다.

광복 직후 설립된 서점이 우생당(대표 고순하)이다. 우생당은 당초 제주시 관덕정 남쪽에서 개업했다. 이후 1948년 3월 제주시 남문통 천주교 교육관으로 잠시 옮겼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원정통(관덕로)에 둥지를 틀어 6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생당은 국정교과서 지정 판매소로 인가받아 초·중·고 교과서를 공급했다. 문방구류를 포함한 교육 용품도 함께 취급해 도민들이라면 지나가다 한 번씩 들르게 되는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 됐다.

우생당은 책과 문구류를 파는 단순한 공간적 ‘서점’의 의미를 뛰어 넘은 곳이었다. 간간이 동호인들이 모여 시낭송회나 문학의 밤 행사를 열었던 것으로 보면 우생당은 당시 다방·극장들과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나란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우생당을 운영하던 고순하는 우생출판사를 겸영하며 당시 문예인들의 동인지 발행에도 한몫했다.

1953년 6월 소설가 계용묵이 발행한 ‘흑산호’도 고 대표의 도움으로 탄생됐다. 1959년에는 우생출판사에서 시 동인지 ‘시작업’을 창간했으며 이듬해 2호까지 발행했다. 이밖에도 우생출판사는 수필집인 ‘상아탑’, ‘검둥이의 서름’, ‘정의의 사람들’, ‘인생 독본’ 등을 출판했다.

유부남의 신분으로 제자와 사랑에 빠진 박목월도 제주 거주 당시 우생당을 자주 들렀다. 그때 즈음 지어진 시가 ‘배경’이다. 떠나간 이를 뒤로 하고 삶을 견뎌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제주읍에서는 / 어디로 가나 등 뒤에 / 수평선이 걸린다 / 황홀한 이 띠를 감고 / 때로는 토주를 마시고 / 때로는 시를 읊고 / 그리고 해질녘에는 / 서사에 들르고 // 먹구슬나무 나직한 돌담 문전에서 / 친구를 찾는다 …중략… 마리아의 눈동자를 / 눈물어린 신앙을 / 먼 종소리를 / 애절하게 풍성한 음악을 / 나는 어쩔 수 없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피난민, 특히 문화 예술인들이 제주로 이주해 오면서 각종 서적 수요가 자연스럽게 증가, 서점들이 속속 개업했다.

제주시 원정통을 중심으로 문화서점, 제주서림, 제주일섬, 동남서점, 동아서점, 신우서점, 신창사 등이 문을 열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서점은 사색의 공간이다. 만남의 장소이며 문화 놀이터다. 당시에도 그 시대에 맞는 문화공간으로서 서점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결같이 한 곳에서 도민들의 삶을 지키고 담아 온 곳, 디지털시대가 아무리 괴롭혀도 흔들리지 않는 외길인생, 서점. 제주의 문화를 담고 지키려했던 서점들의 노력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고현영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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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6-27 23:49:18
노벨상을 받을 만한 혁명적인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기원과 운행을 새롭게 설명하면서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학자들은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나 찬성을 표시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모순을 바로잡고 그들을 하나로 융합하면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모두 밝힌다. 가상의 수학으로 현실의 자연을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하므로 이 책에는 수학이 전혀 없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