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자사고 무슨 실험용인가?
외고·자사고 무슨 실험용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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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수필가 / 시인

[제주일보] “우리 손자 외고에 들어갔어.” “축하하네.” 주변에서 부러워한다.

​외국어고등학교(외고)나 과학고등학교(과학고)에 들어가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해외 유수(有數) 대학을 골라서 원서를 낼 정도다.

​‘외국어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폐지’ 발표로 여름철 열기가 더 뜨겁다.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등학교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공약이다. 찬반이 팽팽하다.

폐지 주장을 들어보자. “외고와 자사고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대학입시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초등학교·중학교 때부터 외고 등 특목고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범이다”라고 지적한다.

일반고로 전환하면 이들 학교의 우수학생 독점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외고·자사고에 우수 학생들이 몰리고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것이 ‘고교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 근거를 알아봤다. 서울대학교 합격생 통계다. 2010학년도에 일반고 66.9%, 자사고·특목고 28.2%에서 2016년에는 일반고 46.1%, 외고·자사고에서 44.6%로 큰 변화를 나타냈다.

2017년도 서울대 평균 합격인원을 보자. 과학고 35.7명, 자사고 29.9명, 외고 10.9명이나 일반고는 겨우 2.5명이다. 서울인 경우 외고(6개) 가운데 성북 소재 D외고(3학년 10학급)는 서울대에 50명 이상 들어가나 강남 8학군내 유명 일반고(3학년 15학급)는 겨우 10명 정도다.

두 학교의 3학년 졸업생수를 놓고 볼 때 외고·자사고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폐지를 반대하는 쪽이 입장을 들어봤다. “학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은 수준별 학습을 막는 조치다.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상위권 일반고가 밀집한 ‘강남권 8학군’이 부활할 것이다.”

외고는 고교평준화에서 일어난 학력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과학고와 함께 태어났다. 외고·자사고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교육의 수월성, 다양성교육에 대한 수요로 인해 과잉 사교육이 발생했다.

전산 배정 등 일률적 배정으로 학생선발권이 없는 일반고가 위기인 것도 현실이다. ‘외국어 우수 인재 양성(외고·1980년)’,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재를 양성(자사고·2000년)’이라는 본래의 설립 취지가 퇴색한 것도 사실이다.

자사고를 관리하는 사학재단이 수백억원을 투자, 기숙사 등 교육 여건을 개선한 노력 또한 인정해야 한다. 자사고 교장은 항변한다. “중학교 내신 성적과 관계없이 선 지원 후 추첨으로 1.5배 선발해 면접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자사고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억울하다.” 외고는 영어 내신과 면접으로 선발한다.

필자는 1980~1990년대 ‘고교평준화’의 현장을 지켜봤다. 매년 2월 초에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인문계) 184개교에 신입생 7만여 명을 전산 배정한다. 중학교 3학생의 주소지, 고교연합고사 성적, 남·여 비율, 종교 등 기초자료를 전산에 입력해 6개월 동안 작업한다.

배정통지서를 받은 신입생이나 학부모들이 모두 흡족한 표정은 아니다.

교육청 민원실은 고함으로 가득찼다. “엉터리 배정 아닙니까?”

내가 본 고교평준화 시책(1974년)은 고교연합고사 성적을 일반고에 고루 배정한 결과에 우려했다. 학급마다 성적 분포도가 심했다. 결국 수업의 효율성을 저하시켜 ‘하향평준화’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 사학의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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