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圖(세한도) 소나무 네 그루와 재선충
歲寒圖(세한도) 소나무 네 그루와 재선충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6.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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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1840년 어느날, 하루 아침에 대역죄인이 돼 제주도 모슬포로 유배됐다. 그가 거주할 초가집 주위를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나 지인들은 그와 가까이 하다가 해를 입을까 또는 출세에 지장이 있을까 연락을 끊었다.

단 한사람만은 달랐다.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편지와 함께 귀중한 책들을 구해 수차례에 걸쳐 유배된 김정희에게 보낸다. 추사는 그 마음에 감동해 빛바랜 종이에 수묵화 한 점을 그려 그에게 보냈다. 세한(歲寒)이란 설 전후의 추위란 뜻으로 매우 심한 추위를 말한다. 그는 어려운 상황을 세한에 비유하고 발문(跋文)에 이렇게 썼다.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柏之後凋也(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심정을 담은 소나무 네 그루와 초가집 한 채. 이 그림이 세한도(歲寒圖)다.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솔가지로 금줄을 치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솔가지 땔감의 연기를 맡으며 살았다. 또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고, 솔잎으로 차를 다려 마시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속껍질을 먹었다.

이처럼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인연이 있으니 소나무 문화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는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 있다. 장수(長壽)를 뜻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가 소나무이며 눈보라 비바람치는 역경 속에서도 푸르른 제 모습을 유지한다 해서 꿋꿋한 절개를 상징한다. 성삼문(成三問)이 죽음을 당하면서 쓴 시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는 아직도 충절의 표상이다.

소나무는 또한 친근한 벗이기도 하다.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했고, 율곡 이이(李珥)는 세한삼우(歲寒三友) 중의 하나로 매화, 대나무와 함께 역시 소나무를 꼽았다.

▲제주사람들은 원래부터 소나무 사람들이다.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생활용구나 농어구도 소나무로 만들고 솔깍 불을 켜서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 관 속에 들어가 한라산 솔밭에 묻혔다.

그뿐이랴.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소나무)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잣나무)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제주 민요 ‘이어도 타령’)

제주사람들은 소나무로 배를 만들고 바다를 소올솔~ 건너 다녔다. 제일 좋아하는 나무를 꼽으라 하면 언제나 1등은 소나무 차지다. 실제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나무 하면 맨 먼저 떠오르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야 어쨌든 소나무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인 것은 분명하다. 4계절 내내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점이 우리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과 닮은 데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종종 인용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호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 제주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수백만 그루가 베어졌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은 이제 초록이 사라지고 시뻘겋게 물들어갈지 모른다. 재선충병은 한번 걸리면 치료약도 없고 100% 말라 죽는 ‘악마의 병’이다. 이대로 가다간 해안지역이건 한라산 기슭이건 제주 소나무는 다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소나무의 소멸(消滅)을 산림학이나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소나무는 이익을 좇아 잔머리를 굴리는 기회주의자들이 들끓는 우리 시대에 길이 보존해야 할 정신 유산(遺産)이다. 우리의 절개, 우리의 지조다.

산방산의 그 유명한 낙락장송은 재선충으로 죽었다. 재선충 사태는 ‘제주도 재앙’이다. 이제라도 범국가적 대응과 함께 ‘소나무 살리기 도민운동’이라도 펼쳐 한라산의 소나무를 지켜내야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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