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오르는 물
산으로 오르는 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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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제주일보] 숨이 턱에 차는 날들의 연속이다. 내리 쏟아지는 더위와 치닫는 자동차의 열기로 도시는 달아오른다. 한여름은 아직 저만치서 서성이는데 몸은 뽑힌 풀처럼 바싹 탄다. TV에서조차 나랏일 걱정하는 이들의 과도한 입담으로 열불 꽃이 핀다.

툴툴 털어 내고 길을 나섰다. 이런 날은 나무 우거진 숲길을 걷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다. 차로 20여 분만 가면 닿는 남조로 변·교래 휴양림으로 들어선다. 들숨 날숨이 기다렸다는 듯 심호흡을 터뜨린다. 걸음발도 덩달아 가볍다.

아침나절이라 길섶에 핀 야생화에 이슬이 대롱거린다. 온 들을 거머쥐고도 모자라 슬금슬금 산으로 치고 오르는 개민들레도 반쯤 감긴 눈으로 풀숲 가에 기대어 있다.

산수국 헛꽃이 틀어지는 고개를 애써 가누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실속 없는 삶일지언정 쉬이 지기는 싫은 눈치다. 어느 여장부의 인생을 닮았다. 가만히 어루만진다. 헛노릇의 삶은 시들어 갈 때가 더 허무한 것일진대, 헛꽃의 허기가 손끝에 와 닿아 안쓰럽다.

제법 고지에 속하는 곳이라 초여름이지만 신록의 오름세가 온 산에 그득하다. 산을 오르는 물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을 타는 물들의 발자국 소리가 사르륵사르륵 끓임 없이 이어진다. 운무도 흐느적거리며 물줄기들의 질주를 부추긴다. 숲이 깊으니 물소리도 깊다.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물은 같이한다. 여기 숲에도 제 각각의 나무들이 물의 길을 만들어 뿌리에서 한껏 뽑아 올린다. 깊숙이 뻗어 잔뿌리들에게 소임을 맡긴 나무는 줄기 따라 펼친 가지를 지나 잎사귀로 물을 보낸다. 더러 조랑조랑 열매 엮어 놓은 나무도 있지만 사철을 두고, 새로운 탄생을 위한 씨앗을 맺고 떨구며 담대하게 숲을 이루리라. 나무를 타며 산을 오르는 물의 소통이 경이롭다.

순응하는 물을 본받을 일이다. 노자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이야말로 선으로 통하는 처세술이며 소통의 기본이 아닐까. 가장 으뜸가는 처세술의 표본도 물이라 했다.

처세의 본뜻은 남과 잘 사귀면서 세상을 살아감이지만 술術이란 접미사로 인해 처세하는 방법에 요령과 수단이란 좋지 않은 뉘앙스가 붙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처세술이 좋다는 이미지가 있는 정치인을 우리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가끔은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지 않는가.

올해, 정권이 바뀌면서 몇 달간 우렁우렁 내지르는 소리들이 사방에 난무하다. 제자리를 찾으려는 가쁜 숨소리로 바꿔 들으니 싫지만은 않다. 다만, 저 높은 산을 오르는 물이 선으로 바뀌기를 소망하며 상선약수의 한 구절을 꺼내 펼쳐본다.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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