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삼신인(三神人) 신화와 협치
탐라 삼신인(三神人) 신화와 협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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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제주일보] 제주에는 수많은 신화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구전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창세신화는 무당들에 의해 구송(口誦)되는 ‘천지왕본풀이’가 대표적이다. 하늘의 신과 지상의 여신이 사랑을 한 뒤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는 또 다른 신을 낳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천지혼합’과 ‘천지개벽’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잉태’와 ‘탄생’을 통해 오늘날의 세상 질서와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탐라 기원신화인 ‘천지왕본풀이’는 어느 날 천지왕이 지상으로 내려왔다가 한 여신을 만나 아들 둘, 대별왕과 소별왕을 잉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형인 대별왕은 자라서 저승을, 동생인 소별왕은 지상을 다스린다. 이 과정에서 형과 동생은 양보와 협력으로 분할 영역을 나누는 지혜를 발휘한다.

지상으로 내려온 소별왕은 여러가지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다. 해와 달이 각각 두 개씩이었기 때문에 질서가 매우 어지러웠다. 때문에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웠다. 나무들이 말을 하고 굶주린 귀신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돌아다녔다. 인간과 귀신이 구분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3800년을 산다는 수명장자가 지상의 온갖 괴물을 거느리고 세상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해 말 그대로 지상은 아수라장이었다.

소별왕은 천지왕과 대별왕의 도움을 얻어 해와 달을 각각 한 개씩으로 줄였고 포악하기 그지 없는 수명장자도 어렵사리 처리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의 질서는 잡혔고 올바른 법(法)이 제정되면서 지상은 평화의 연속이었다. 그러자 소별왕은 천지왕에게 탐라를 다스릴 진정한 ‘탐라의 신’을 부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 지금의 삼성혈)이라는 커다란 구멍에서 삼신인(三神人)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소별왕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인하고 신하들과 함께 천지왕이 있는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이후 삼신인은 스스로 고을나, 양을나, 부을라라고 이름을 지었다. 삼신인은 체격이 몹시 크고 도량이 넓었다. 이들은 가죽옷을 입고 수렵생활을 하며 사이좋게 지냈다. 얼마 후 삼신인은 이웃 벽랑국의 공주들과 결혼하면서 각자의 생활터전을 마련하기로 했다. 탐라를 셋이 3등분해서 자손만대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삼신인은 각자의 활솜씨가 고르게 뛰어나니 한라산에 올라 화살을 쏜 뒤 떨어지는 곳에 각자 영역을 정하자고 했다. 다들 찬성했다. 며칠 뒤 이들은 한라산에서 활을 쏘았다.

화살이 처음 떨어진 곳을 제1도(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두 번째 떨어진 곳을 제2도(지금의 이도동), 세 번째 떨어진 곳을 제3도(지금의 삼도동)라고 정했다. 이후 삼신인은 각자 그 곳에 도읍을 정하고 오곡을 심고 소와 말을 키워 행복한 농경사회를 잘 다스려 나갔다.

근래들어 ‘협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협치는 말 그대로 서로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뜻이다. 무엇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를 조성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협치’가 ‘대치’로 변질됐다. 정치권에서는 장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해 협치라는 말로 난타전을 벌이기도 한다. 협치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기관, 단체들에게도 적용된다. 협치는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소통과 상생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물론이며 꼬인 문제를 얼마든지 풀어낼 수도 있다. 그럴진대….

아주 오랜 태곳적 탐라 삼신인은 아무런 다툼도 없이 서로 양보하고 인정하는 상생의 원리로 세상을 다스렸다. 그래서 이들의 협치는 달빛에 물든 신화다. 이래저래 덥다. 한 줄기 시원함을 찾은 그늘 속에서 삼신인의 신화를 문득 떠올려 보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봤다. 그리고 되뇌였다. ‘에구, 모든 것이 가물었구나’라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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