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운 국제연극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주다운 국제연극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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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제주일보] 제주는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촬영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런 촬영지가 오랫동안 관리가 잘 안 돼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도 점점 늘어나고 제주영화제·제주여성영화제·장애인영화제·프랑스영화제 등 영화 축제도 꽤 된다. 덩달아 우리 단원들도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기회도 많아져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내가 아쉬워하는 건 이렇다 할 연극축제가 없다는 것이다.

제주연극협회에서 일 년에 한 번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를 겸한 제주연극제와 소극장축제를 해 오고 있지만 도내 연극인들만 참가하는 아직 미약한 연극제다. 한 10년 전, 세이레에서 전국적인 어린이축제를 해보려고 기획도 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몇 년 동안 죽어지내야 할 정도로 엄청 깨진 축제기획이었다. 오죽했으면 첫 해를 끝으로 아직껏 엄두도 못 내고 있을까. 그런데도 자꾸 꿈을 꾸게 되는 건 왜일까. 사람들이 제주에 연극 보러 온다, 제주가면 이 연극은 꼭 봐야 된다 등등 내가 꾸는 이 꿈은 헛된 꿈인가. 아니다. 거창국제연극제나 부산국제연극제, 밀양연극제 등 세계적인 극단들도 참가하는 성공한 연극제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몇 년 전부터 국제연극제를 앞다투며 열고 있다. 지원금에 의존하며 시작했고 아직 이름이 알려진 연극제가 아니지만 나로선 부럽기만 하다.

10년 전이던가? 우리가 참가했었던 거창국제연극제를 소개해 본다. 해마다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휴가철이면 거창국제연극제가 개최되는 그곳은 관광객과 피서를 즐기려는 인원들로 가득찬 희한한 예술도시로 변한다. 특히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던 인파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인근에서 가족단위로 야영을 하거나 주변 숙박업소에 짐을 풀고는 공연을 보며 휴가를 만끽한다. 우리 극단은 ‘다시 부르는 사모곡’이라는 작품으로 참가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공연하던 날, 하필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집행 사무국은 비가 와도 공연은 강행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미 매진되었고, 이곳이 냇가이다 보니 비도 자주 오고 공연하다 보면 비가 그칠 때도 있다고. 큰 기대는 안했지만 공연 마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배우들의 의상이 몸에 딱 달라붙어 춤을 출 수 없을 정도였지만 공연 후 우리가 받은 충격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200석 규모의 감나무극장(야외극장)인데 우비를 입고 비에 젖은 의자에 걸터앉아 관람하는 관객들을 보고 우리는 더이상 비나 의상 탓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우산 쓰고 관람하는 관객도 없었다. 옆 사람이나 뒷사람에게 방해가 된다고 우산도 안 쓰던, 한마디로 미친 관객들이었다.

이런 감동은 밀양연극제, 아비뇽축제에서도 목격했다. 온통 거리가 연극포스터로 도배돼 있고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이 축제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연극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 또한 예술이 우리네 삶에 큰 감흥을 준다는 것, 그걸 직접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축제들이다. 그런데 자꾸 부럽고 속상하다.

우리 제주도 그들처럼 관객이 직접 찾아오게 하는 연극축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제주 해수욕장에서 하는 바다연극축제든, 절물이나 비자림 등 숲속에서 하는 곶자왈 생명연극축제든 뭐든 좋다. 작은 규모의 연극제면 어떠리.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돈 없다는 이유로 엄두도 못 냈지만 빗속에서도 연극관람을 위해 무작정 기다린 미친 관객들도 있는데 예술인들이 안 미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못 미칠 이유는 없다. 소박하게 기획해 보자. 어차피 자리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 지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제주가 거창이나 밀양 같은, 아니 아비뇽 같은 예술의 섬으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겠나. 늦기 전에 시도하자고 제안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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