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학도병들의 米壽(미수)
제주 학도병들의 米壽(미수)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6.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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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학도병(學徒兵). 제주도내 중·고등학생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안고 자기 키만한 M1 소총을 들었다. 6·25가 나던 그해 8월 산지항(지금 제주항)은 전쟁터로 떠나는 학생들과 이들을 떠나 보내는 가족들의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그 제주 학도병들은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작전, 도솔산 전투 등 이 산하(山河)의 수많은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고 뼈를 묻었다.

그로부터 67주년. 살아 돌아온 학도병들은 이제 미수(米壽, 88세)를 맞거나 앞두고 있다. 제주사대부고 교장과 한라대학 학장을 지낸 신용준 선생도 그 학도병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6·25 최악의 전투였던 ‘縣里(현리)전투’를 겪었다. 지난 봄 자신이 살아온 치열한 삶을 정리한 ‘미수기념행록-덕재상록’을 펴냈다. 제주교원양성소(제주교대 전신) 졸업과 초등교사 발령 대기 중 참전했던 부창옥씨도(제주일보 제33회 보훈대상 수상자)도 미수를 앞두고 출간을 준비 중이다. 또 해병 3~4기 학도병 가운데서도 회고록을 준비 중인 몇 분이 더 있다.

▲미수를 맞은 학도병들은 제1공화국의 6·25에서 지금까지 현대사를 목도해온 사람들이다. 역사의 낡은 페이지는 공화국의 서차 명명(序次命名)부터 시작된다.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이어 ‘죽을 사(死)’를 연상하는 4를 피해 제5공화국이 나왔다. 1980년 10월 제8차 개정헌법, 곧 ‘전두환 헌법’은 아예 전문(前文)에 그 이름을 박았다.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노태우 정권의 제6공화국이다.

서차(序次)로 굳이 제 몇 공화국을 따지자면 지금도 제6공화국이다. 후속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실은 각각 제6공화국의 제2-3-4기에 해당하지만 다들 달리 불러왔다. 문민-국민-참여정부라고. 이명박 정권은 그냥 이름 그대로 ‘이명박 정부’로 했고 박근혜 정권도 ‘박근혜 정부’로 불렀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다. 6·25에서 살아남은 학도병들은 지금까지 끈질긴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다음 정부까지 학도병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6·25에 참전한 제주지역 학도병은 수천명에 이른다. 제주고 전신인 제주농업중학교(6년제) 학생 145명은 16~19세 꽃다운 나이에 출정했다. 당시 고남화 제주농업중 학도대장(학생회장)과 학생들은 최전방 전투부대를 지원했다. 이들은 키가 작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되자 검사관을 설득해 키와 나이를 고쳐 합격 통지를 받아냈다. 이 가운데 38명이 전사했다. 이 뿐만 아니다. 대정중은 재학생 350여 명 중 275명이 지원해 전쟁터에 갔다. 오현중, 서귀포농업중, 중문중, 한림중, 성산중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으로 교사와 함께 총을 들었다. 그리고 피어린 산하에 뼈를 묻었다.

보훈청은 제주지역 학도병이 몇명인지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군번이 없는 학도병들의 인적사항과 소속 부대 등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주 학도병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6·25 당시 교사와 학도병 등을 중심으로 3000여 명이 지원해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전했다는 것 정도다. 참전단체들이 학도병을 소개해왔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며칠 있으면 6·25, 67주년이다. 올해 보훈의 달은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6·25를 기념하는 취지는 그 참극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반드시 ‘잊지 말자’는 ‘물망오계(勿忘五戒)’가 있다. 6·25 참상과 호국 영령들의 은혜, 희생 가족들의 고통, 통일의 비원(悲願), 그리고 나라의 소중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제는 노인이 돼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린다”고 했다.

6·25에 참전한 전국 각지의 학도병 중 제주 출신이 가장 많다. 국가보훈처의 제주 학도병에 대한 예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실태를 파악해 그 결과를 보훈처에 제출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 노력이야말로 미수를 맞은 제주학도병들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는 일이 될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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