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國境) 나들기
국경(國境) 나들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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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잠 깨세요(Wake up)!”

누군가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시각은 아마 새벽 세시쯤, 유럽열차 객실에서였다. 여름방학을 포함한 두 달 동안 영국에서의 영어교수법 연수를 마치고(1989) 전국 15명 교사연수진 중 네 사람은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14일짜리 열차표(Eu-rail Pass)를 구입하고 유럽열차시간표 월간잡지(Thomas Cook)를 사서 마치 수학여행계획처럼 빈틈없이 이동계획을 세웠다.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를 거쳐, 제1회 동계올림픽 개최지 샤모니, 몽블랑 케이블카, 오스트리아는 귀퉁이를 거치며 로마까지 내려가서 다시 위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 뮌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오스텐데에서 도버해협을 되 건너 런던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비를 절약하고 짧은 시일에 많은 곳을 둘러보기 위하여 밤잠은 열차에서 자며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방법을 썼다.

유럽의 열차객실은 마주보는 의자의 방석을 앞으로 당기면 침대처럼 쓸 수 있다. 잠에서 깨면 열차는 이탈리아 북부를 달리고 있으리라 믿으며 자고 있었다.

열차가 국경에 닿으면 헝가리로 가는 객차는 분리되어 헝가리기관차에 끌려가고, 로마로 가는 객차는 이탈리아기관차에 끌려가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로마로 가는 열차인가만을 확인하여 오르고 나서, 손님이 없는 한가한 객차를 골라 편안함을 즐기며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잠에서 깨운 그 사람은 오스트리아 사람이었고, 영어가 퍽 서툴러 우리를 깨워 설명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가 우리를 깨우지 않고 30분만 더 잠을 잤더라면, 우리는 그 당시 우리나라와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헝가리로 갔을 터이고, 어쩌면 북한으로 끌려가 ‘남조선 영어교사 4명 탈남(脫南)’의 선전굴레에 아직도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오싹! 식은땀이 난다.

#“한국으로 가는 항공표 있어요.”

네덜란드 오스텐데에서 영국행 카페리에 올랐다. ‘아! 이제 긴장의 연속인 유럽배낭여행도 막바지로구나.’ 안도감에 모두 잠에 들었다. 잠결에 실내방송이 들렸다.

유럽 이외의 국가에서 온 승객은 입국신고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신고서를 받아와서 작성하였다. ‘부 선생, 귀가 밝네요’라는 일행의 칭찬이 지금도 기분을 밝게 한다.

선창에서 서글픈 상황을 겪게 되었다. 입국신고서를 작성한 외국인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있었다. 일본여행객들은 한 사람도 미리 작성하지 못하였고, 그제야 용지를 받아 허둥대며 쓰고 있었다.

‘영어귀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못 하구나.’ 살짝 쾌재를 느끼며,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웬걸! 옆에서 대기하라고 해놓고는 줄 뒤쪽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낸다.

면도조차 거르던 여행, 얼마나 험상궂게 보였을까.

항공표를 보여주어야 입국이 허가됐다. 그 동안 열차좌석은 이미 다 차지됐고, 런던까지 서서 가야 했다.

#‘신고하고(Declare) 버리시오(Dispose), 아니면 벌금 내시오(Or Pay Fine).’

뉴질랜드는 세관신고․검색이 아주 엄격하다. 농산물은 물론 그 가공품까지 일체 반입할 수 없다. 기내에서 신고서를 작성할 때부터 그 분위기(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뉴질랜드를 청정으로 살리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口蹄疫)이 들어가는 순간, 그 나라의 4만불 GNP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출국장으로 거쳐 나서면

수학여행 걸음으로 들뜨고,

입국장으로 지쳐 들어오면

아!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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