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문화 만드는 일, 제주 정서와 닮았어요"
"공동체 문화 만드는 일, 제주 정서와 닮았어요"
  • 강민성 기자
  • 승인 2016.01.04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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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옥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아이들이 희망이잖아요. 우리 미래가 건강하기 위해선 아이들이 건강해야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어른들이 ‘그거 갖지마, 하지마’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존재에 익숙해져 있고, 사회적 약자인 아동의 권리를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 NGO의 역할이고 굿네이버스의 역할이겠지요.”

굿네이버스가 아동복지프로그램에 왜 집중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양진옥 사무총장(43)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방금 전까지 고향인 제주 이야기에 환하게 웃던 얼굴이 아니다.
내년이면 꼬박 20년째 사회복지분야를 걷게 되는 그녀는 국내는 물론 북한과 해외에서 ‘굶주림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사무총장이다.

굿네이버스는 몽골과 캄보디아에서는 태양에너지 분야, 네팔에서는 허브오일을 이용한 농업분야, 르완다에서는 커피원두를 활용한 농업기술 보급 등 사회적기업도 운영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단순한 구호물자 지원이 아니라, 현지조사 통해 지역 실정에 맞게 지원하는 것이 토종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특징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양 사무총장은 “해외 현장에 가보면 소위 선진국에서 설립한 학교가 폐교된 곳을 여럿 볼 수 있어요. 학교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지역주민들의 삶을 이해해야만, 자립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요. 그 다음 안정적 소득원을 확보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부족한 점을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는 자립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굿네이버스 해외구호전문가들이 가진 좌담회의 결론이 ‘구호단체는 신이 아니다. 구호의 기본은 존중’이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구호 활동마저 스펙쌓기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경고이기도 하다. 

그녀가 20년간 활동해 온 일들을 풀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아동복지, 아동인권이라는 말들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 요즘의 ‘방과후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방학교실 프로그램’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을 때 굶는 아이들이 확 늘어났어요. 굿네이버스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하고 준비를 마쳤는데, 정작 신청 학교가 단 한 군데도 없는 거예요. 방학에는 학교에도 갈 수 없고, 부모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끼니까지 굶는 실정인데, 정말 안타까웠지요. 학교장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지요. 그때만 해도 방학에 학교 문을 연다는 게, 학교장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심’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양 사무총장은 산업화, 자본화가 경제적 ‘부’를 쌓는 속도에만 신경을 쓰고 그 외적인 것은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리사회가 경제적 부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정부나 지역사회가 고민해야 하는데 외면해 온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잠깐 숨을 돌린 그녀는 “우리는 과거 원조를 받다가 해외 원조를 해주는 위치로 변했다”며 “하지만 물질적 부나 기술의 발전에 비해 공동체, 나눔, 배려 같은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전쟁 이후 1990년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해외원조는 25조원 규모. 1991년부터는 해외원조 수혜국에서 역전해 해외원조국이 됐다. 유엔은 원조 규모를 국민 총소득의 0.7%를 권장하고 있고 OECD 국가 평균은 0.23%, 1위인 덴마크는 무려 0.91%에 이른다. 우리의 경우 0.06% 수준이다.

1995년에 굿네이버스에 입사한 양 사무총장은 “정말 2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아동학대에 대해 신고도 많이 늘었고, 관련 기관에서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려는 의지도 확연히 달라졌다.

제도적으로도 관련 법들이 제정·개정돼서 아동복지기관이 학대 현장을 경찰과 함께 찾아 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많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결과가 아닌 방임·학대의 징후를 발견했을 때 구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정작 아이들을 방임·학대하지 않도록 부모의 역할에 대해, 건강한 가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사회복지분야에 어떻게 입문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제주의 정서가 아닐까요?”라고 되묻는다.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1남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는 그녀는 “어릴 때에는 정말 경계없이 마음껏 돌아다녔지요. 동네 언니·오빠 구분없이. 그 시절엔 다 그랬던 것 같아요. 함께 나누고, 제주 정서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바탕이 됐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굿네이버스에서 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들이 꼭 제주 정서를 닮은 것 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변경혜 기자 
 

강민성 기자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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