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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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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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알게 되는 것 하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이가 같거나 비슷해야 친구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고정관념 보다는 마음이 편한 사람이 친구란 생각이 듭니다.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가 같아 대화가 잘 통하고 이해를 잘 해주는 사이여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은 나이가 적든 많든 친구란 생각이 듭니다. 친구는 집입니다. 세상의 편지 풍파에 시달린 마음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집입니다. (중략) 일 없이 만나고 그냥 찾아가고 그냥 전화하는 관계, 이것은 편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편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출처:석란정 카페)

오랜 친구가 SNS를 통해 위의 글을 보내왔다. 이 친구와는 첫 직장에서 동료로 만난 것이 인연이 돼 올해 25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친구가 보내온 글 덕분에 오늘 이렇게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감사하다.

‘친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친하다’, ‘가까이 하다’, ‘ 거리를 둔다’, ‘같이 논다’, ‘비밀을 공유하다’, ‘배 아플 때도 있다’, ‘때론 스승같다’, ‘우정’, ‘또래’라고 대답한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들도 또래의 존재를 인식하고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아직 같이 놀 줄은 모르며 그저 같이 있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면 또래들끼리 협동 놀이를 할 수 있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에 참여 할 수도 있게 된다. 역할 놀이도 시작된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빠, 엄마의 역할을 해보면서 공감해보기도 하고 아기 인형을 혼내주면서 자신이 받았던 꾸중에 대해 불편했던 마음을 해소해 보기도 한다. 환상을 실현해 보는 것이다. 이때 이 환상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바로 친구다. 그리고 또래와 양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을 익히는 사회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대인관계의 기술과 능력이 또래와의 접촉을 통해 많이 향상된다.

초등학생이 됐을 땐 또래로부터의 인정이 매우 중요한 일상이 된다. 아이들은 또래·친구를 어떻게 사귀게 될까? 놀면서다. 같이 놀면서 즐거움을 느끼다보면 친해지게 된다. 이때 즈음이면 규칙이 있는 놀이를 함께 하게 된다. 숨바꼭질·공기·딱지·카드놀이 등이다. 이런 놀이를 함께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는데 신기한 것이 지겨움을 못 느낀다. 그 이유는 사회적 규칙을 익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서로 지키면 친구, 지키지 않으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그룹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리더도 생기게 된다. 이때 남을 잘 도와주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고 인정받게 된다. 다른 사람의 존경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만약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는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이제 아이들은 사회의 단맛과 쓴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놀이의 경험을 친구와 함께 하면서 말이다.

청소년기가 되면 옷차림, 놀이, 문화 등 생활의 모든 면에서 친구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친구들끼리 자신들만 아는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그 비밀의 공유는 결속력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이때 서로 가까이 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거리를 두는 사이로 나뉘기도 한다.

성인기에 막 입문하게 될 때에 친구는 가끔 열등감을 도드라지게 느끼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누가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공부를 잘 하는지 비교의 잣대가 한두 가지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무엇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 모호해지기도 한다. 비교의 잣대가 느슨한 사람도 있지만 비교에 집착을 하게 되면 친구의 발전에 매사 예민한 자극을 받게 된다. 이러한 비교 속에 남아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 하면 우정은 금이 가게 된다.

중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친구의 양보다는 질을 우선해야 한다. 사회적 관계망을 다양하게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대인관계가 성공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중년 이후부터는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골라서 만날 필요가 있다. 중년이 넘도록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놓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은 나이를 먹어 조금이라도 무리하게 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 몸을 무시하고 남의 눈을 두려워하며 끌려 다니다간 큰 병을 얻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 두기는 필요하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필자의 오랜 친구는 필자의 ‘뽀족함’을 늘 ‘명료함’이라 일컬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한결같은 따뜻함에 힘입어 가끔 그녀와 동석하는 자리에서는 그녀의 말투, 태도를 눈여겨 보며 따르려 한다. 힘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면 조금 있다 그녀에게 전화 걸어 ‘무한수다’를 떨 수 있다는 기대로 그 순간을 넘기기도 한다. 서로 햇빛이 돼 비춰주기도 하고 가끔은 시원한 그늘이 돼주기도 하는 친구 사이, 긴 인연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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